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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앎

비빔밥과 김치로부터 배우는 비빔의 철학과 비빔의 신학

비빔과 김치로 부터 배우는 비빔빔의 철학과 비빔의 신학

정경호 교수(영남신학대학교) 

© BlueKorea.com


우리 한국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비빔밥이다. 오래전 유동식 교수"민속종교와 한국문화"란 책에서 비빔의 철학을 소개한 바 있다.

비빔밥을 만들기 위하여 먼저 밥그릇이 있어야 하고 그 그릇의 바닥에는 땅에서 농사를 지은 쌀과 보리로 만든 밥이 깔려 있다. 구운 김이나 달걀과 고기가 다시마 튀김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산해진미랄 것 까지는 없겠으나 산나물과 해초와 날짐승의 알과 쇠고기가 들어 있으니 산과 바다와 하늘과 땅의 모든 음식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셈이다. 거기에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 것이 비빔밥이다. 매끄럽고 고소한 참기름은 음식에 율동을 준다. 논과 밭 곧 땅에서 거둔 쌀을 적당하게 섞어 지은 밥을 바닥에 깔고 하늘과 땅 사이의 온갖 것을 모아 율동성을 가한 것이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의 음식들을 하나의 밥그릇 속에 모아놓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빔밥은 단순히 잡다한 여러 가지를 한 곳에 모은 음식이 아니라 비빔이라는 율동 적인 작업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맛이 창조된 음식이다. 중요한 것은 한번 비빔밥이 된 후에 그 잡다한 여러 음식들이 단순하게 섞여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가 된 다는데 있는 것이다. 땅에서 나온 것 산에서 나온 것 바다에서 나온 것 그리고 하늘의 것 곧 천지를 한 그릇 속에 모아놓고 비빔으로써 혼돈의 세계가 된 것이 아니라 각 기 다른 여럿을 함께 비벼서 새로운 하나의 맛을 창조한 것이 비빔밥인 것이다.

© 최승관


이렇게 보면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들이 비빔의 철학이 담겨 있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있을 것이다. 특히 김치는 더더욱 비빔밥의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김치는 밭에서 자란 배추로써 만드는데 그러나 거기에는 공중에 달린 고추와 배와 밤 등이 들어가고 또 땅 속의 무와 마늘이 들어간다. 게다가 바다의 새우와 고기도 들어가기도 한다. 김치 속에도 바다와 땅과 하늘의 것들이 한 곳에 섞어 손맛으로 잘 비벼 만든 것이 우리가 즐겨 먹는 김치이다. 
그러나 김치가 우리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주는 것은 맛있는 김치가 되기 위해서는 배추가 다섯 번이나 죽는다고 한다. 배추는 첫째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둘째 배추통이 갈라지면서 또 죽고, 셋째 소금에 절여질 때 다시 죽고, 넷째 매운 고추와 짠 젓갈에 범벅돼서 또 다시 죽고, 다섯째 장독에 담겨 땅에 묻히면서 죽어야(요즘은 김치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겠지만)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비빔밥이든 김치이든 모두 비빔의 철학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 특유의 음식이다. 이러한 비빔의 철학을 넘어 비빔의 신학을 잘 보여준 성서말씀은 사도행전 2장 44-47절에 나타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이다.

교회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교회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교회였다.“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쓴” 교회였다.(42절) 또한 2장 44-47절은 42절을 보다 구체적으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삶을 설명해주는 말씀이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대로 서로 배경과 생각과 삶의 형태가 다른 사람들이 신앙으로 만나고 어울리고 섞이고 잘 비벼져서 거룩한 하나가 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밥상을 함께 나누며 주의 성찬을 나누고, 그리고 모두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 뜻에 따라 살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 새로운 이상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결단하며 나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가장 아름다운 맛을 낼 수 있었던 네 가지 중심 메뉴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 2장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라고 하는 그릇 속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배움, 사랑으로 연대하고 일치하는 친교, 나의 것 내어놓고 함께 나누는 식탁 나눔 곧 밥상공동체, 그리고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하고 그 뜻에 살아가고자 한 기도의 신앙이 들어 있다. 이러한 네 가지의 신앙의 모습 곧 신령한 음식들이 성령으로 비벼져 전혀 새로운 맛을 창출한 비빔밥 곧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도 거룩한 교회가 된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공동체가 존재하고 살아간 이러한 신앙과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은 놀라운 일과 기적을 낳게 되었고 이러한 일들이 당시 사람들을 감동으로 사로잡았던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공동체의 현존과 활동을 통해 충만한 생명・정의・평화의 삶이 넘쳐 참된 기쁨과 구원을 맛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이러한 공동체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고, 감동을 주고 엄청난 영향을 끼쳐 누룩처럼 퍼져 사람과 세상을 변화하게 한다. 초대교회의 공동체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고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맛보게 한 축복의 장소였다. 사도행전 2장 47절“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으니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2장과 4장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공동체가 오래 가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다고 믿었던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재산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함께 내어 놓고 나누어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한대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그들은 소비적인 공동생활에만 중점을 두었지 생산적인 공동생활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위한 공동생산이 없었기에 그 공동체는 오래 유지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함께 노동하고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함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그리고 함께 밥상을 나누며 이웃과 세상을 봉사해내는 공동체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셋째로 초대교회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던 당시의 사회는 엄격한 사유재산제도를 지닌 불평등한 사회구조였다. 그렇기에 빈부의 양극화와 함께 계층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변혁 없이는 특정 집단의 공동체는 오래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시도하였던 것은 그들이 신앙으로 함께 비벼내고자 한 생명・정의・평화 넘치는 새로운 이상사회 곧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 새로운 대안 사회를 오고 올 신앙의 사람들에게 제시하면서 몸소 살아간 것이라 하겠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오늘날 심각한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의 그늘 속에서 더욱 빈부의 양극화로 신음하며 울부짖는 우리들의 이웃과 오늘의 세계를 보게 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오늘 우리들에게 사회‧경제‧정치‧문화의 양극화의 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적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인지를 진지하게 질문해오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시도하였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통하여 오늘 우리들에게 어떠한 대안적인 비전을 가지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엄숙하게 물어오고 있는 것이다. 


자료출처: 정경호 교수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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