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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앎

느림과 멈춤의 나라 쿠바로부터 들려 오는 땅과 강의 이야기

느림과 멈춤의 나라 쿠바로부터 들려오는 땅과 강의 이야기

                                                                   Rev. Dr Hong Insik(홍인식 목사)


1. 땅과 강의 위기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요즘 대한민국의 땅과 강의 외마디 소리가 요란하다. 여기저기서 포크레인과 불도저에 의해서 파헤쳐지고 있는 땅과 강의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아무도 땅과 강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땅과 강의 소리를 듣고 이들의 외침을 전달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도대체 대한민국 땅과 강에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가? 땅과 강의 신음 소리가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의 관리들과 고위 공직자들에 그리고 많은 국민들에게 제대로 들려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땅과 강의 신음 소리와 죽음은 우리들의 삶과 후손들의 삶과 더불어 온 인류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갖고 옴에 틀림없는데도 왜 우리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2008년에 발생하여 아직도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세계 금융 위기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본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 부실로 시작된 국제 금융 경제 위기는 우리의 관심을 집중 시켰다. 특별히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가하는 문제는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원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측면의 분석을 내 놓고 있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이 내 놓은 원인분석의 내용 중에서 신앙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번 금융위기의 배후에는 ‘탐욕’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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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교수는 Terry Burnam의 Mean Markets and the Lizard Brain을 인용하면서 “탐욕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충동적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원초적 감정 중의 하나로서 탐욕이 지배하는 금융 시장에서의 실제행동을 연구한 결과 지극히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한다.


오늘 우리의 삶을 휘어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금융 위기의 배후에 탐욕이 자리 잡고 있듯이 오늘 땅과 강의 신음소리가 들려지지 않는 이유의 배후에도 인간의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에게 이웃의 소리가 들려올 리가 없다. 아니 탐욕은 우리의 귀를 애써 막고 있다. 듣지 못하도록 우리의 청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탐욕이 문제이다.


이렇듯 오늘의 경제위기와 더불어서 땅과 강의 위기와 신음은 근본적으로 이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출발되어지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영성의 문제와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땅과 강의 문제로 대변되는 생태계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나는 본 글에서 땅과 강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탐욕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는 전혀 다른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 쿠바에서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그들은 탐욕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쿠바의 삶의 모습: 사회주의 쿠바가 남긴 유산



쿠바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이다. 특히 미국의 50년이 넘는 경제봉쇄 정책으로 인하여 다른 국가들과의 통상의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1990년대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던 구(舊)소련의 붕괴는 쿠바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하였다. 쿠바는 이 시기를 특별시기(Periodo especial)로 명명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개방정책을 구사하는 등 많은 자구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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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이 기간에 도입된 관광 사업에 의한 외화유치는 쿠바로 하여금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이룩되었던 전통적 가치에 대한 포기를 강요하기도 하였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을 용이하게 만들기도 하는 부정적인 결과도 가져왔다. 이러한 쿠바의 경제위기 극복 노력은 1959년 카스트로의 혁명 이후 쿠바 사회를 형성하여 왔던 많은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오게 만들었고 많은 부분에서 전통적인 삶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지금의 쿠바의 모습은 1959년 혁명 이후 유지해 왔던 전통적인 삶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나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인적인 가치관보다는 공동체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살고 있는 쿠바인들의 삶의 모습은 오늘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본 글에서는 나의 쿠바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쿠바에서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어떻게 우리의 탐욕의 조절에 도움을 줄 것인가를 밝히게 될 것이다.


① 물질의 번영을 넘어서는 따뜻한 인간의 정이 흐르는 인간중심의 인간화 사회
관광 사업 도입이후 쿠바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달러의 위력을 국민들이 실제로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필요한 물질의 충족을 넘어서서 잠재되어 있던 많은 물질의 소유에 대한 욕망을 일으켰다. 필요에 의한 물질 사용에 익숙해 있던 쿠바인들에게 물질 소유 개념은 그들의 삶에서 많은 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제 쿠바인들에게도 물질에 대한 소유와 번영은 관심을 크는 가장 중요한 삶의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1959년 혁명 이후 쿠바를 지배했던 사회주의의 *새로운 인간론(Hombre Nuevo)*은 여전히 이들에게 핵심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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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간은 누구인가?


“진정한 혁명은 인간 내부에 있다. 이웃에게 탐욕을 부리는 늑대 같은 인간은 혁명가가 될 수 없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제는 ‘새로운 인간’의 시대다. 도덕적인 동기에서 일을 시작하고 끊임없는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까지 자신의 목숨마저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인간이다.” 


체 게바라 Che Guevara 의 발언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따뜻한 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한 탐욕은 우리의 삶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 속에서 쿠바는 아직도 경제발전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개념에서 출발시키고 있다. Economia Humana(인간적인 경제)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새로운 인간론에 기인하고 있다. 인간적인 경제는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세계를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자연 또한 또 다른 형태의 인간적인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쿠바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경제적 성장과 이익창출로 인하여 파헤쳐진 땅과 강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언제나 따뜻한 모습으로 우리를 대하는 땅과 강의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인간을 향한 따듯한 정이 흐르고 있는 쿠바 사회는 탐욕으로 뒤덮여서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수단으로 생각하며 땅과 강을 경제적 이익 창출의 개념으로만 바라보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② 개인에 앞서서 서로의 사랑과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 정신
어느 날 늦은 밥이었다. 갑자기 나의 방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경이다. 깜짝 놀라 문을 여니 학생 하나가 서 있었다. 미안한 기색으로 학생은 나에게 항생제와 해열제를 가지고 있는가를 물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 정도라면 당장 급한 것도 아니고 아침이 되어서 부탁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조금은 화가 난 표정으로 약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학생 하나가 찾아 온 것이 아니었다. 신학대학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든 것처럼 나의 방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알고 보니 마을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서 약을 구하려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일반 비상약이 귀한 쿠바에서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한 아기의 아픔이 전 마을 사람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회가 쿠바 사회임을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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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욕망의 제한
땅과 강이 신음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욕망에 있음은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과연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을까? 성경은 인간의 욕망 제어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다. 욕망이 자라서 죄가 되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제어의 문제는 신학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질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쿠바 사회는 욕망의 문제를 제도적인 면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 가를 살펴보자.


쿠바는 1991년 특별시기를 거치면서 관광을 개방하면서 외국관광객과 달러 유입으로 인하여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관광산업이 국가의 주 수입원으로 등장하면서 그때까지 국영이었던 기업들에게서도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개인 소유의 기업의 허용이 그것이다. 음식점과 숙박업을 개인들에게도 개방한 것이다. 개인 소유의 사업의 허용은 쿠바인들 사이에서 소득의 격차를 가져오게 되었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개인 자영업을 운영하게 된 쿠바인들은 좀 더 많은 소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자칫하면 개인 자영업의 허용으로 말미암아 자본축적에 대한 욕구가 봇물 터지듯이 나올 뻔 한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쿠바 정부가 택한 정책은 개인 자영업을 허용하되 그 한계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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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사업의 영역이다. 소규모의 음식점과 숙박업에 한하여 개인 자영업을 허용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엇보다도 사업의 규모이다. 음식점의 경우에는 실내에 설치할 수 있는 의자의 규모를 12개로 한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숙박업의 경우에는 객실 두 개로 한정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서 개인 자영업의 무한정한 확대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놓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러한 제도의 경제적 효율성에 대하여 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욕망의 제한이라는 측면에서 쿠바에서의 이 같은 제도는 욕망의 무한한 확산을 용인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곱씹어 볼 만한 시도가 아닌가 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없는 욕망의 확산은 결국 우리 모두를 신음하게 만들고 있고 우리의 삶의 터전이고 우리의 친구인 자연의 세계, 땅과 강으로 하여금 시음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방법, 저런 제도를 구상하면서 인간의 한없는 욕망이 확산을 제어할 방도가 어디에 있는 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욕망의 제어는 인류와 그리고 자연, 땅과 강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④ 사유재산의 공공성 확보
사유재산은 절대적이며 신성한 것인가? 이 질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도전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사유재산의 신성함과 절대성에 대한 인정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사유재산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쿠바에서는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쿠바에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주택 및 부동산에 대한 재산권이 인정되고 있고 또한 재산권에 대한 상속권도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쿠바인들은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주택과 토지를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획득한 사유재산원은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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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에서 주택과 토지에 대한 사유 재산권을 자본주의 사회와는 다른 개념이다. 특히 부동산에 대한 소유와 사용에 대한 권리이지 그것을 판매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집과 주택은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임의로 판매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유는 가능하지만 판매는 불가능한 모순적인 제도가 쿠바의 사유재산제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택과 토지는 개인의 것이 될 수는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공공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에 대한 공공성을 담보하는 이러한 제도로 인하여 주택과 토지를 이용한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토지 구입과 판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판매는 금지되어 있지만 같은 조건 하에서 서로 부동산을 교환하는 제도는 허용하고 있어서 소규모적이기는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교환을 이용한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천적으로 판매가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인한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를 하지 않고 있다. 오늘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땅과 강의 문제, 생태계의 문제 또한 이러한 사유 재산에 대한 절대성과 신성화로부터 기인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세계를 친구로 하락해 더불어 살게 하셨다. 이러한 땅과 강과의 더불어 삶은 사유재산이 절대화 되고 신성시 되는 제도 하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쿠바의 사유재산의 공공성 확보에 대한 제도는 비록 그것이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안고 있다고 할지라도 오늘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유재산의 절대화와 신성화로 발생하고 있는 인간성의 파괴와 땅과 강의 신음 등 생태계의 파멸의 문제에 일정한 형태의 해결책을 마련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유재산의 공공성 확보의 제도로 인하여 쿠바 정부는 지금도 생태계를 잘 보존하고 있으며 되도록 인간의 손이 조금 가는 형태로 자연을 보존하고 있다. 경제논리에 의한 부문별한 자연 훼손은 쿠바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쿠바 사회가 남긴 유산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⑤ 물질을 극복하는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정신적 사회의 건설
⑥ 평등사회의 추구: 소유 재산과 소득의 균형을 이룸
⑦ 소외 없는 사회 건설의 시도: 교육, 의료, 주택 등.


3. 나가는 말



쿠바의 삶은 느리다. 모든 면에서 느리다. 빠름에 익숙해 져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에게 쿠바는 미칠 정도로 느리다. 우리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생각으로 오늘의 삶을 빠르게 살고자 한다. 그러나 쿠바인들은 오늘 못하면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빠르게 살지 않는다. 느리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인간중심의 인간화 삶이 가능할 지도 모르다. 느림이 있기에 사랑과 협력과 연대가 가능하고 사유재산의 공공성이 인정되는지도 모른다. 느림이 있기에 욕망의 확신도 느려지는 것이 아닐까. 쿠바의 느림의 삶은 땅과 강에게도 쉼을 주고 있다. 본래 땅과 강은 느림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그러기에 느림의 상징인 땅과 강이 느림의 나라인 쿠바에서는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쿠바와 더불어 조화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쿠바의 삶은 멈춤이다. 마치 시계가 멈춤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바나 중심가를 걷고 있으면 마치 17세기의 유럽을 걷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 그 당시의 건물과 그 당시의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역사의 한 가운데를 걸어가는 느낌을 준다. 경제발전의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던 쿠바는 멈춤을 실천 할 수 있었다. 오늘 멈춤이 없는 한국 사회가 모든 과거의 건물을 철거하고 앞만 보고 달린 결과로 황량한 서울을 만들어 놓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멈춤이 있었기에 땅과 강도 그대로 멈추어 있다. 경제발전의 논리에 의해서 멈춤 없이 개발되어지고 있음으로 인하여 신음하고 있는 우리의 땅과 강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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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쿠바는 여전히 가난하다. 그리고 자본의 유입으로 인간의 욕망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쿠바가 이러한 자본주의 욕망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떻게 지켜 낼 수 있을 것인가는 큰 의문으로 남는다. 과연 버텨 낼 수 있을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비록 가난하지만 쿠바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중요한 가치관들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크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욕망을 바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우리의 사회에서 쿠바의 실험적인 제도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손해가 아닐 수 없고 또 위기일 수밖에 없다. 사람과 그리고 땅과 강을 포함한 생태계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에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쿠바 사회의 실험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계속되어지기를 바라고 또 인류가 현명하다면 쿠바 사회의 실험이 인류에게 중요한 대안적 삶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감지하고 이 실험이 계속되어 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쿠바 혁명 50주년을 맞이해서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이 뒤를 이은 그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혁명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건합니다. 이는 결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조차도 한 번도 그 원칙들을 지키는데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만약 누군가 삶 자체가 끊임없는 투쟁이라는 사실을 잊고서 피곤해졌다거나 심지어 그들의 역사를 부정할 때 조차도 변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이제 위험이 줄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어떤 황상으로도 스스로를 속이지 맙시다. 우리가 반세기의 승리의 역사를 축하하는 때가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투쟁을 계속해야 할 다음 20년의 미래에 대해 성찰할 대입니다. 당면한 세계의 위기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다가올 시간이 우리에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Raul Castro, 2009년 1월 1일 혁명 50주년 기념식에서)


그렇다. 우리의 투쟁은 계속되어져야 한다. 인류가 경쟁이 아닌 협력과 상생으로 더 잘 살아갈 수 있고 그리고 땅과 강, 그리고 온 생태계가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며 더 이상 인간의 욕망 때문에 신음하고 고통 받지 않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기대는 기독교 희망의 가장 중요한 모습 중의 하나일 것이다. 새로운 인간의 창조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기독교적 희망을 죽음을 넘어서는 단순한 개인적인 구원만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이 사회를 향하여 “더 나는 사회”의 대안적인 모델을 제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 본 글의 저작권은 홍인식 목사님께 있습니다. 
  • 본 글은 2010년 오이코스 여름학교에서 홍인식 목사님이 강의하신 원고 내용을 그대로 옮겼고 사진만 블로그 운영자가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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