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WCC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2 (WCC란 무엇인가?)

2013.11.27 18:28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박성원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중앙위원)


4. WCC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2)


나. 최근의 WCC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WCC의 신앙고백이 의심스럽다.” 이 주장은 사실인가?

이는 WCC의 기본입장을 모르는 견해이다.

WCC 헌장 1조에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Koinonia)이다.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is a fellowship of churches which confess the Lord Jesus Christ as God and Saviour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therefore seek to fulfill together their common calling to the glory of the one God, Father, Son and Holy Spirit.)”라고 밝히고 있다. WCC는 성경,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위에 굳게 선 세계교회 연합체이다.


WCC는 같은 헌장에서 ‘한 믿음, 한 성례전적 교제 안에서의 가시적 일치’, ‘예배와 공동생활’, ‘세상을 향해 함께 증언하고 봉사함’으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어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그 목적과 기능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곧 “저희가 다 하나가 되어... 세상으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성취하기 위한 세계교회의 공동 노력이다.


2) “WCC는 선교에는 관심이 없다.” 이 주장은 사실인가?

이는 전혀 사실무근이다. 위 헌장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한다는 것이 곧 선교라는 사실도 명시되어 있지만 1910년 에딘버러에서 선교와 일치를 위해 전 세계교회가 함께 모인 세계선교대회(WMC)가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직접적 배경인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도 WCC안에는 에딘버러 대회의 전통을 이어오는 “선교와 전도위원회”(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가 지속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무국에는 ‘선교와 전도 일치국’이 설치되어 세계교회의 선교와 전도에 대한 지원과 협력, 선교신학의 성찰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3) “WCC는 용공이다.” 이 주장은 타당한가?

시대착오적 말이다. WCC는 ‘교회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념도 지향한적이 없다. 자본주의도 지지한 적 없고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지지한 적이 없다. WCC는 그 헌장에서 밝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의 신앙고백 위에 서 있다. 중요한 것은 WCC는 냉전시대 때 공산체제 속에 있는 교회도 회원교회로 받아들였고 함께 교제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어떤 정치체제 속에 있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이기 때문이었다.


더욱 중요한 일은 공산체제아래 있던 교회들의 보존을 위해 WCC가 엄청나게 노력했고 그 노력으로 공산권이 무너졌을 때 교회가 다시 부흥할 수 있었다. 북한 교회가 세계교회와 연결되게 한데도 WCC가 도산소 과정을 통해 정치적 장벽을 무릅쓰고 교제를 시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WCC가 용공이란 주장을 한다면 지금 북한교회와 만나며 교제하며 지원하는 한국교회는 모두 용공이다. 한국교회는 북한교회를 남한교회와 연결해 준 WCC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4)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 이 말은 사실인가?

WCC를 전체적으로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가 사회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WCC에는 선교와 전도, 기독교교육 이외에 거대한 양대 산맥이 있다. 하나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흐름으로서 신앙과 일치를 강조하는 면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일’(Life and Work)의 흐름으로서 복음의 사회적 증언을 강조하는 측면이다.


한국에는 WCC가 70, 80년대의 사회상황과 관련하여 인권과 민주화 등에 많은 지원을 했기 때문에 WCC의 사회선교적 측면만 부각되어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고 알려진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이 두 흐름이 팽팽하게 공존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교회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사이에서 갈등했듯이 이 갈등과 견제가 지금도 WCC속에 상존하고 있다.


또한 사회선교에도 두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는 인권이나 민주화와 같은 정치적 증언이고 이것과 대등하게 큰 또 하나의 흐름은 봉사(Diakonia)이다. WCC의 사회선교에는 봉사의 면도 강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번 WCC 총회를 계기로 한국교회는 WCC의 신앙과 영성, 선교와 봉사 부분에도 이해의 폭을 넓혀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양쪽 날개 모두를 통전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WCC의 사회적 증언에 대한 이런 이해의 폭과 연계해서 정말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WCC의 사회적 증언의 신앙적 기반 혹은 신앙적 동기이다. WCC의 사회적 증언은 사회참여 차원이 아니고 복음증언의 차원이다. 다시 말하면 WCC의 사회참여는 복음에 대한 신실성 때문에 이루어진다. 인종주의(racism)에 대한 WCC의 입장이 그 한 예이다. 1954년 제2차 에반스톤 총회에서는 인종주의와 식민주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에반스톤 총회는 “인종, 피부색, 종족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복음과 교회의 본질에 위배된다.”고 선언하고 모든 회원교회가 자신들의 삶과 사회안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나치주의에 대한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선언(Barmen Declaration)이 복음의 정치적 해석이 아닌 정치적 상황에 대한 복음의 신앙고백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WCC 창설이후 바르멘선언과 같은 형태의 고백신앙 운동의 중심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d)이 있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선언처럼, 남아공화란개혁선교교회처럼, 사회적 상황에 의해 신앙 자체가 도전받을 때는 신앙고백적 대응을 해 왔다. WCC가 웁살라 총회이후 인권주의철폐를 위한 프로그램(Programme to Combat Racism)을 설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이다. WCC의 사회증언은 교회의 사회참여, 정치참여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복음의 선포, 신앙의 증언으로 이해해야 함이 옳다고 본다.


5) “WCC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는 올바른 이해인가?

솔직히 말하면 WCC의 신학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WCC는 회원교회들의 다양한 신학이 서로 대화하고 조정하고 공통의 신학적 견해를 찾아가는 문자 그대로 ‘Council’, 즉 ‘협의체’이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한다면 WCC 고유의 신학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WCC안에는 여러 신학노선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자유주의 신학도 존재하고 엄청나게 보수주의적 신학도 존재한다. 정교회의 신학은 한국의 보수신학보다도 훨씬 더 보수적이고 회원교회 중에는 복음주의교회, 성령운동인 오순절 교회도 상당히 참여하고 있다. WCC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 일변도로 비춰진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우리나라에는 WCC가 주로 인권이나 민주화 등 사회적 증언 쪽으로만 알려져서 그렇게 비춰진 면이 있다.


6) “WCC는 다원주의이다.” 여기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WCC는 종교간의 교리를 섞은 적이 한번도 없다. WCC의 궁극적 목적이 분열된 교회가 구조적 일치를 이루어 세상에 하나의 교회를 표방하는 가시적 일치인데 현재로는 이것 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 이유는 WCC 밖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도 그렇지만 WCC안에 있는 양대 교회, 즉 정교회와 개신교회도 결코 서로의 교리를 섞을 수 없다는 입장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조적 일치는 전혀 거론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하물며 종교간의 교리를 섞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은 분명히 한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천도교, 불교, 기독교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함께 독립선언을 했듯이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류의 화해를 위한 세계적 과제 때문에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종교간의 협력과 다원주의는 다르다.


지금까지 WCC에는 공산권의 교회까지도 함께 참여하니 용공적이란 오해를 하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삶의 존엄성을 위해서 일하다 보니 사회참여적이란 오해를 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다른 종교와 대화하다 보니 다원주의라는 오해를 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들을 그야 말로 오해이며 모두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WCC안에는 엄청나게 보수적인 교회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맺는 말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에큐메니칼 운동을 해 온 교회이다. 과거에는 ‘장.감.성.’ 즉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가 늘 함께 복음을 증거해 온 전통이 있다. 장로교회의 경우는 1907년 독노회 구성시, 한국교회 신앙고백 채택, 7인의 한국인 목사 안수와 더불어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에 가입했으므로 최초부터 에큐메니칼 교회임을 천명한 셈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WCC총회를 준비하고 주관하는 경험을 통해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세계 교회가 하나되는데 큰 기여를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이해를 한국교회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서 세계적, 우주적 지평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WCC총회가 그들의 잔치가 아니라 그 속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One Universal Church of Jesus Christ)의 신앙증언과 신앙축제가 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세계교회를 섬기는 귀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WCC





하율이 아빠 WCC 10th Assembly in Pusan(WCC 제 10차 총회)/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1. Blog Icon
    쓰스와 허매

    1965년에 동서교회가 화합? ㅋ

    우리가 복음주의자라고 잘 알려져 있는 빌리 그래함등이
    야합한거지..

    1960년대 70년대는 쏘련 공산주의가 전세계에 맹렬히 휩쓸던 시기였고

    세계 각지에서 빈자와 부자들 사이에 이루말할 수 없는 살육전이 벌어진
    시기였다. 남미에서는 해방신학이 들어섰다 파문을 받기도 하고!


    ----------------------------------------------------------------------

    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통합측 주일학교 공과에서도 로마 카톨릭
    을 음녀 중의 음녀로 적시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켰는데

    74년? 75년? 갑자기 공과책에 에큐메니칼과 마틴 루터 킹 목사
    이야기가 쌩뚱맞게 나와서 어리둥절한 적이 있었다.

    75년은 월남이 패망한 해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 난민탈출을
    하였으며 포터 목사는 월맹을 칭송해 마지 않았다.

    당시는 한국에서는 유신이 휘몰아쳤고 M교회 목사는 유신을 비판하다가
    교회에서 쫒겨나고 하나님의 징계인 폐병에 사경을 헤매었지만
    기적적으로 치유함을 받고 M교회를 개척하여 잘 ~ 살았다.


    그 이후로는 철저히 반공주의자, 친여중에 친여로서 교회를 이끌어 가면서
    시시때때로 정치적인 멘트를 날렸지만 친여성향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아무런 문제 없었슴.

  2. 소셜 라이브리 테스트 댓글
    이상한 댓글은 사절
    앞으로는 그냥 삭제하거나 무시할 거에요
    정중하게 그리고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이야기 해주세요
    떠도는 소문만 가지고 와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상상소년 소녀로 임명해서 말걸어와도 모른척할 겁니다 :-)

  3. 댓글이 잘 달아 진고 있습니다 ㅎㅎ
    오른쪽에 있는 최근 댓글을 클릭해서 댓글이 보이지 않을 시에는
    Leave a Comment를 누시면 댓글이 보입니다 ㅎㅎㅎ

  4. Blog Icon
    쓰스와 허매

    댓글이 잘 달아진고? 지고가 아니고? ㅎㅎ


    근데 WCC 사상 초유로 주최국 국가원수가 참석을 안했다며? 환영사도 안했고?

    정치인들이 표에 얼마나 민감한데? WCC 사상최악의 실패를 기록하다!

    템플스테이도 동성애자 부스 파리 날리는 것도...매우 바쁘셔서 못보셨으면 간단히 인터넷 검색~

  5. Blog Icon
    노랑군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은 분명히 한다. 우리 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천도교, 불교, 기독교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함께 독립선언을 했듯이 정의 와 평화, 그리고 인류의 화해를 위한 세계적 과제 때문에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종교간의 협력과
    다원주의는 다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종교간 협력을 하려면. 배타성은 거두고 서로를 인정이해하며 대화해야 하겠지요. 종교간에 인정이라는 말은. 내생각도 옳지만 당신생각도 옳소. 라는 뜻이겠죠. 그럼. 이게곧 다원주의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기독교는 본래 구조적으로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인데 타종교(다른신)를 인정하는순간 정체성을 잃는것입니다. 다원주의는 아닌데 협력은 한다? 인정없는 협력이 가능한가요? 서로를 배척하며 협력이 가능한가요?

  6.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렵고 애매한 문제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도 아직도 혼돈스럽고 정말 조심스럽습니다. 조금만 선을 벗어나면 기독교에서는 다원주의자, 다른 종교에서는 배타주의자가 되기 딱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이 문제를 쉬쉬하며 덮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지구는 세계화가 되었고 인종, 문화, 종교가 뒤섞인체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노랑군님께서 남기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가 내리기에 앞서서(제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제게 질문을 하신 것 같아서요...) PCID, WCC, WEA 이 세곳에서 협력하여 작성한 "다종교세계에서의 기독교의 증언"이란 문서와 이 문서에 대한 해설에 관한 포스트 주소를 댓글로 남기겠습니다. 이 문서는 아주 급진적인 것도 또한 아주 보수적인 것도 아닙니다. 제가 봤을 때는 아주 평범하게 작성된 문서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꼭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http://oikoumene.tistory.com/67
    http://oikoumene.tistory.com/77

4. WCC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1 (WCC 가입교회)

2013.11.19 22:15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박성원 (前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前 WCC중앙위원)


4. WCC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1)


WCC에 대한 한국교회의 이해는 다양하다. 예장통합, 기장, 감리교회, 구세군, 복음교회, 정교회, 로마 카톨릭 교회 심지어 최근에는 오순절 교회도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나 WCC에 대해 반대하는 교단들도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 일부의 WCC에 대한 오해에는 미국의 극우적 반공주의자이자 근본주의자인 멕킨타이어의 영향아래 WCC를 용공주의, 자유주의로 몰아세운 것과 7,80년대 군사정권아래 WCC가 한국의 인권과 민주화에 대한 지원을 한 것을 보고 군사정부가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을 두는 정치집단이라는 일방적 매도의 영향이 큰 작용을 한 것 같다. 최근에 와서는 종교간의 대화 때문에 다원주의라고 몰아세우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비난이 정당한가는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교회나 기관의 입장을 확인할 때는 그 기관의 공식입장에 근거해야 한다. 한 교단 안에 다양한 신학적 주장을 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그 교단의 공식적 입장은 교단적 차원에서 표명한 공식입장에 근거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WCC는 정치참여를 강조하는 진보적 신학, 종교다원주의, 용공주의, 전도와 교회성장은 등한시하는 자유주의 운동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일부 보수적 교회의 주장들에 대해 살펴보자. 먼서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는 WCC의 교회론에 대해 알아보자.


가. WCC 교회론

WCC가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의 원인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WCC가 세계 단일교회 형성을 지향한다는 이유라고 지적하고 있다. 195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2차 총회에 보고된 에큐메니칼 연구위원회의 보고서에는 “친선과 협조를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과거에나 현재에도 참가하여 왔으니 계속 참가하기로 하되, 단일교회를 지향하는 운동에 대하여는 반대하기로” 결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WCC가 세계 단일교회를 지향한다는 것은 당시에도 오해였고 지금도 오해이다.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창설된 WCC는 협의회(The Council)의 성격, 협의회와 회원교회와의 관계 등과 같은 많은 문제에 대해 전부 답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문제들을 1950년 카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WCC 중앙위원회에 넘겼다. 토론토 중앙위원회는 이 문제들을 논의하고 “교회, 교회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The Church, the churches and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란 성명서를 채택했는데 “토론토 성명서”(Toronto Statement)라고 알려진 이 문서는 이후 세계교회협의회의 성격과 교회론 이해에 중요한 문서가 되었다. 이 문서는 지금도 WCC의 교회론과 협의회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교과서적 문서이므로 WCC교회론을 이해하려면 이 문서를 잘 이해함이 필요하다.


이 문서는 “WCC가 아닌 것”(What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is not)과 “WCC의 기초가 되는 강령들”(The assumptions underlying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에 대해서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 보면 WCC가 무엇은 추구하고 무엇은 추구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먼저 “WCC가 아닌 것”으로 다섯 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1. 세계교회협의회는 단일교회(Super Church)도 아니고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2. 세계교회협의회의 목적은 교회간의 연합을 협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간의 연합은 (연합을 원하는) 교회의 주도로 교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일뿐 (세계교회협의회가 하는 일은) 교회들이 서로 접촉하고 교회 일치 문제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촉진하는 일이다.
3. 세계교회협의회는 특정한 교회 개념에 기초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교회론적 문제를 예단하지 않는다.
4. 세계교회협의회의 회원이 된다고 해서 그 회원교회가 자기 교회의 개념을 상대화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5. 세계교회협의회의 회원이 된다고 해서 교회 일치의 본질에 관한 어떤 특정한 교리를 수용해야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명서는 “WCC가 아닌 것”이란 첫 번째 항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세계교회협의회는 단일교회(super church)도 아니”고, “세계교회(world church)도 아니”고,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하나의 거룩한 교회(Una Sancta)도 아니”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WCC가 단일교회를 지향한다는 것은 순전히 오해였다. 토론토 성명서에 따르면 WCC가 단일교회를 지향한다는 오해는 한국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닌 것 같다. 토론토성명서는 이런 오해에 대한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해가 일어나므로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WCC는 교회적 구조(ecclesial structure)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교회적 치리를 행하지 않는다. WCC가 교회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회간의 연합을 협상할 수도 없고 결정할 수도 없다.


©Peter Williams/WCC, WCC 10차 총회 일치 주제 회의


WCC는 어떤 특정한 신학이나 특정한 교회개념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오해도 있다. 보수교회는 WCC를 진보적 신학의 산실이라고 보고 있지만 정교회쪽에서는 WCC가 너무 프로테스탄트 신학과 교회론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나 하는 오해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 때문에 WCC는 정교회와 WCC의 관계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WCC안에는 한국의 보수적 교회 이상으로 보수적인 회원교회도 많이 있다. WCC안에는 시대적 정황에 따라 어떤 특정 교회론이나 신학의 목소리가 높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교회론과 신학들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곳이지 어떤 특정 신학과 교회개념을 규정하는 곳은 아니다.


토론토성명서는 이렇게 ‘WCC가 아닌 것’을 밝힌 다음에 무엇이 WCC를 지탱하고 있는 강령인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 WCC 회원교회들은 대화를 하든지 협력을 하든지 교회의 공동증언을 하든지 모든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거룩한 머리라는 공동의 인식에 근거해서 해야 한다.
2. WCC 회원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라는 신약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3. WCC 회원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됨이 자기의 특정한 교회의 일원됨보다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자기 교회밖에 있는 교회로서 역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교회들과 살아있는 교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4. WCC 회원교회는 타 교회들과 신조에서 고백하는 거룩한 공교회가 가지는 관계성을 서로 고려할 과제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각 회원교회들이 타 교회들을 반드시 자기 교회가 생각하는 순수한 교회라는 의미에서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5. WCC 회원교회는 다른 교회에도 진정한 교회의 요소들이 있음을 서로 인정한다. 이 상호인정은 다른 교회 안에 있는 진정한 교회의 요소들이 결국은 온전히 진정한 교회에 대한 인정과 그 온전히 진정한 교회에 근거한 일치로 이끌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서로 진지하게 대화에 들어갈 것을 고려한다.
6. WCC 회원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교회들이 어떤 증언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도록 부름 받고 있는지 서로 배우기를 갈망하며 서로 협의할 용의가 있다.
7. WCC에 함께 회원이 된다는 더 실천적 의미는 모든 회원교회는 서로 연대하며 서로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며, 이런 행동을 하기를 주저한다면 이는 형제적 관계와 합치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8. WCC 회원교회는 서로 영적 관계 속에 들어가 서로 배우며 서로 도와주어 그리스도의 몸을 굳건히 세우고 교회의 삶이 갱신되도록 한다.


이 WCC의 기초 강령들을 다 종합하면 결국 WCC에 가입하여 회원이 된다고 해서 WCC가 규정하는 어떤 획일적인 교회론으로 흡수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회원교회는 자기 교회가 믿고 있는 교회론과 치리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다른 교회를 모두 부정할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들안에서 진정한 교회의 요소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교회에게도 부과하신 주님의 사명을 확인하고 성부 성자 성령이 맡기신 사명을 함께 감당하는 거룩한 교제를 하자는 뜻이다. WCC가 밝히는 교회가 가지는 보편성(Catholicity)과 교회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2006년도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채택된 교회론 문서인 ‘하나의 교회로의 부름’(Called To be the One Church)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잘 정리되어 있다. “각 교회는 보편적 교회이며, 보편성의 단순한 일부가 아니다. 각 교회는 보편적 교회이나 그 보편성의 전부는 아니다. 각 교회는 그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거룩한 교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그 보편성을 성취하는 것이다.(Each Church is the Church catholic and not simply a part of it. Each church is the Church catholic, but not the whole of it. Each church fulfills its catholicity when it is in communion with the other churches.)


이와 함께 기초 강령 중에 주목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리가 각각 속한 교단보다 더 크다.”는 제3항이다. 이 말은 우리가 속한 교단은 상대적이지 절대적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만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서로 상대적인 교회들이 대화하며 교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거룩한(Una Sancta)교회를 바라보며 ‘함께 거하고(Stay Together), 함께 기도하고(Pray together), 함께 일하고(Work together), 함께 봉사하며(Serve together), 함께 자라자(Grow together)’는 것이 WCC의 정신이다.


©Peter Williams/WCC, WCC 10차 총회 일치 주제 회의






하율이 아빠 WCC 10th Assembly in Pusan(WCC 제 10차 총회)/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1. 어떻게 목사라는 분들이 우상과 다원주의를 받아들인다는게 이해가 안되네요 우리나라의 믿음이 이렇게 물질에 무너지는건지 그 많은 순교의 역사가 헛되게 만드는지~

  2. 숲을 보실 때는 나무 한 구루만 보시고 그 숲이 어떤 숲이다라고 판단하지 마시고 전체적으로 어떤 나무가 분포 되어 있는지를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글을 조금이라도 유심히 읽어 본다면 평신도님께서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트리실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믿음이 물질에 무너진다는 것은 지금의 한국교회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세상보다 더 물질을 추구하고 더 생명을 경시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평화 :-)

3. WCC 형성에서 총회에 이르기까지(WCC란 무엇인가?)

2013.08.27 23:07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박성원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중앙위원)


3. WCC 형성에서 총회에 이르기까지


WCC의 공식 창설은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가진 창립총회였다. 그러나 암스테르담 창립총회가 있기까지 기나긴 여정이 있었다. 근대 세계교회의 일치운동은 영국침례교회 인도선교사 윌리엄 케리가 1810년에 세계선교사들이 10년에 한번은 함께 만날 필요를 제기함으로 시작되었는데 그의 꿈은 그로부터 100년 뒤인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국제선교대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nference)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에딘버러 국제선교대회(IMC)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모태이다.



이후 1919년 1월 동방정교회 총회에서 세계 제1차 대전 이후 국제정치권에서 국제연맹(κοινονια τον εθνον, Koinonia ton Ethnon)이 구성되는 것을 보고 교회도 교회연맹(κοινονια τον εκκλεσιον, Koinonia ton Ekklesion)을 구성하자고 제안하면서 WCC 창설의 여명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런 요구는 이미 시작된 “선교와 일치”지류에 이어 이후에 형성된 “삶과 노동” 지류, “신앙과 직제”지류, 1780년에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에 의해 제창된 주일학교운동으로 시작된 “신학교육”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합해져 거대한 세계교회일치 운동의 강물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1938년에 WCC 헌장이 초안되고 1941년에 창설될 예정이었으나 세계 제2차 대전 관계로 연기되어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창립하게 된 것이다. (* WCC생성과 총회에 이르기까지의 도표는 부록참조)


부록




하율이 아빠 WCC 10th Assembly in Pusan(WCC 제 10차 총회)/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2. WCC 총회는 어떤 교회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WCC란 무엇인가?)

2013.08.08 09:30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박성원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중앙위원)


2. WCC 총회는 어떤 교회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하나의 교회는 사도행전 5장에서 나타나는 대로 초기부터 분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주요 분열역사

1. 5세기 칼세돈 회의때 동방교회간의 분열
2. 11세기 ‐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열
3. 16세기 ‐ 종교개혁으로 분열
4. 19세기에는 선교운동으로 핵분열


이렇게 분열만 해 오던 교회가 ‘교회분열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반성하고 하나되기 위한 노력을 2000여년 만에 시작했기 때문에 에큐메니칼운동은 2천년 교회사의 중요한 사건이며 그 운동의 정점에 WCC가 있다.


흔히들 에큐메니칼운동은 20세기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최초의 에큐메니칼 회의는 예루살렘 회의(행 15:1‐29)였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의 일치된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도행전 5장부터 일련의 교회분열의 요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기적 마음(행5), 헬라파와 히브리파의 갈등(행 6장), 스데반 순교 이후의 반대파의 조직적 외압(행 7‐8장), 복음의 전파에 따른 이방인과 유대인의 갈등(행 10‐11장), 이로 인한 사도들의 신학적 견해차이 등 내적, 외적 요인으로 교회는 이미 상당한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예루살렘 회의는 바로 이런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모인 최초의 에큐메니칼 공의회였다.


이후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데 이견이 있을 때마다 대표들이 함께 모여 공의회(Ecumenical Council)를 개최하고 ‘이해의 조정’을 기하고 ‘교회의 복음증언의 방향’을 결정해왔다. 니케아회의, 칼세돈회의, 에베소회의, 콘스탄티노플회의들이 대표적 에큐메니칼 공의회들이고 동서방교회가 분열된 이후 로마 카톨릭교회의 공의회는 라테란공의회로부터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WCC총회는 동서방교회분열 이후 부분적이긴 하지만 동서방 교회가 모두 참여하는 공의회의 전통을 민주적 형식으로 진행하는 근대교회 공의회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제10차 WCC총회는 교회사적 측면에서 볼 때 예루살렘에서 열린 첫 에큐메니칼공의회의 전통을 21세기에 한국에서 개최하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부산총회는 WCC뿐만 아니라 장로교회와 루터교회의 세계연합체인 세계개혁교회연맹(WARC)과 루터교세계연맹(LWF)이 함께 참여하는 확대총회가 될 예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총회는 세계교회사적인 동시에 한국교회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초대교회사의 공의회

1. 제1차 니케아 공회의 (325): 니케아신조작성,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는 영원전부터 존재한 것이 아닌 피조물이라는 아리우스주의 배격
2.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회의 (381): 니케아신경 제정
3. 에베소 공회의 (431): 인성과 신성을 구분하는 네스토리우스주의 배격
4. 칼케돈 공회의 (451): 칼케돈신조 작성 ‐ 단성설 배격, 예수 안에 완전한 신성/인성 공존의 양성론 주장
5.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회의 (553): 기존공의회 결정 재확인, 신아리우스주의, 네스토리안주의, 단성론 정죄
6.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회의 (680‐681): 단의론 배격, 그리스도안에 사람으로서의 뜻과 신으로의 뜻 공존 하는 양의론 옹호
7. 제2차 니케아 공회의 (787): 성화상에 그려진 성인 존경표시 부활 (성화상 성인 존경 금지법 754 콘스탄티노플회의)


로마 카톨릭교회가 수용하는 공의회

1.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회의 (870‐880)
2. 제1차 라테란 공회의 (1123)
3. 제2차 라테란 공회의 (1139)
4. 제3차 라테란 공회의 (1179)
5. 제4차 라테란 공회의 (1215)
6. 제1차 리용 공회의 (1245)
7. 제2차 리용 공회의 (1274)
8. 비엔나 공회의 (1311‐1312)
9. 콘스탄츠 공의회 (1418)
10. 바젤‐페레라‐프로렌스 공의회 (1413‐1445)
11. 제5차 라테란 공의회 (1512‐1517)
12. 트리엔트 공의회 (1545‐1563)
13. 제1차 바티칸 공의회 (1870)
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


WCC총회가 고대교회의 공의회와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고대교회 공의회는 주로 교리적인 이견에 대한 조정과 공식적인 입장정리를 위한 것이었지만 근대의 에큐메니칼 총회는 교회 일치와 교리의 공동이해를 비롯해 오늘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복음의 공동증언의 방향을 함께 정하고 공동의 선교, 공동의 봉사를 다짐하는 일을 강조한다. 그리고 세상의 일치와 정의, 평화를 위한 교회적 입장을 천명한다.


둘째 차이점은 고대교회공의회는 감독 등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대표들만 참여했지만 WCC총회는 성직자, 평신도, 여성, 청년 등으로 민주적 교회총대가 구성된다. 부산총회는 공식총대를 포함하여 약 7천여 명의 세계교회 인사들이 참여하여 이 시대를 향한 기독교의 복음증언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독교의 신앙축제가 될 것이다.



하율이 아빠 WCC 10th Assembly in Pusan(WCC 제 10차 총회)/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1. WCC란 무엇인가?(WCC는 무엇인가?)

2013.07.11 01:56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박성원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중앙위원)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General Assembly)가 2013년 한국 부산에서 열린다. WCC는 무엇이며 WCC총회는 무엇인가? WCC는 왜 생겼는가? 한국교회 일부에서는 WCC총회를 반대하는데 왜 그런가? 한국교회는 WCC총회에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 WCC총회는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국교회는 WCC총회를 어떻게 준비하여야 하는가? WCC총회를 잘 준비하기 위해서는 WCC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1. WCC란 무엇인가?


WCC는 “온 지구상에 거하는 만물”(All Inhabitants on Earth)을 뜻하는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ε)의 비전을 가지고 세계의 흩어진 모든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적 기구이다. WCC는 2010년 1월 현재 전 세계 140개국의 349개의 개신교회와 정교회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여기에 속한 기독교인수가 약 5억 8천만에 달하는 세계적 기독교연합기구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아직 WCC의 정식 회원교회는 아니지만 WCC의 한 흐름인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위원회에는 정식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므로 WCC는 명실 공히 전 세계 기독교를 망라한 기독교의 유엔이라고 할 수 있다.


WCC는 스위스 제네바 에큐메니칼 선터 (150, route de Ferney 1211 Geneva 2, Switzerland, http://www.oikoumene.org) 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WCC 가맹교단 분포도



WCC는 지난 60여년동안 시대적 과제에 따라 여러 가지 부서를 형성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다섯 지류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하고 있다.


1. 신앙과 직제 (Faith and Order)
2. 선교와 일치 (Mission and Unity)
3. 봉사와 협력 (Diakonia and Cooperation)
4. 국제문제 (International Affairs)
5. 신학교육 (Theological Education)


하율이 아빠 WCC 10th Assembly in Pusan(WCC 제 10차 총회)/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박성원 교수

  1. WCC로 인해 정말 많은 말들이 성도간에 논란이 됩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는 세계교회연합이라고 하셨는데,
    어째 다른글에는 종교다원주의니 이슬람, 불교도 하나의 종교 교회로 회원이라는등..
    참으로 말들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본교회 담임 목사님께 직접 여쭈어 보았더니
    제가 들은 기억대로...다시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교수님의 설명이 제대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결론은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의 말을 신뢰하지 못함으로 발생되는 오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자신의 선택이 아니면 모두 아니라는
    우리 크리스찬의 이기심이 아닌지, 참으로 씁쓸합니다.

  2. 안녕하세요 김해숙님 :-)
    지금의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WCC 문제는
    김해숙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르면 모든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데 몸된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내가 배워온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규정하고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가로 막는 지금의 반대자들은
    주님의 몸을 찢고 있는 것이겠지요.

    한 하나님, 한 예수님, 한 성령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한국교회, 세계교회를 소망합니다. 평화 :-)

  3. Blog Icon
    임채룡

    기독교안에서 진실한 믿음의 신념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념으로 누군가 악용하고 있음에 마음 아픕니다.

  4. 네~ 맞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색깔과 냄새가 없는 분인데
    그분에게 우리가 원하는 색깔과 냄새를 덧씌워
    그걸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강요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를 뛰어 넘어 누가 하나님인가를 고민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평화 :-)

  5. Blog Icon
    마라나타

    wcc는 종교 대통합입니다
    어떻게 구원이 모든 종교에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십자가에 있는데
    wcc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다
    정말 이제 요한계시록처럼 마지막때입니다
    정말 영의 눈을 올바로 뜨시고 십자가를 제대로 붙드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이제 진짜와 가짜가 구분된다고 봅니다
    마지막때 정말 핍박입니다

  6. 안녕하세요 마라나타님
    일단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이 가뭄에 콩나듯이 달리는 곳인데 WCC 부산총회가 다가오니까
    방문객도 늘어나고 댓글도 많이 달리네요

    먼저 마라나타님이 WCC가 종교통합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으셨는지 궁금하네요. 한쪽은 종교통합이다 그 반대쪽은 아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지금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잘못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저는 여러 에큐메니칼 대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WCC, CCA, 그리고 Oikos 신학학교 등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요. 제가 에큐메니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때 참석한 대회에서도 종교통합을 추진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말씀위에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구나를 느꼈습니다. 이것이 제가 에큐메니칼 신학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이유입니다.

    두번째 본 블로그에 올려져있는 WCC가 종교통합을 한다고 주장을 하는 자들에 대한 반론의 글들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공자, 마호메트를 구원자로 인정한다는 얘기는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죠. 덧붙히자면 '다종교세계에서 기독교의 증언'이라는 문서를 한번 꼭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왜 교회가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해야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하나님읜 생명, 정의,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니님의 집(oikos)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은 당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평화 :-)

  7. Blog Icon
    마라나타

    WCC란 무엇인가?

    World council of churshes 의 약자이다.

    말그대로를 보면 아주 좋은 단체이다.

    어느 단체가 이름을 지을 때 나쁜 의미로 이름을

    지을리가 없겠죠.

    그러니 더욱 이름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은 이런 좋은 이름 아래 모여서

    어떤 모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고 있죠.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다는 것인데,

    이 WCC는 타 종교도 인정을 해 줍니다.



    즉 석가모니나 공자도 구원자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죠.

    그들이 성인이었던 것은 맞으나

    신은 아니죠. 구원자는 아닙니다.



    타 종교와의 대화.. 라는 허울 좋은 단어를 통해

    유일신인 기독교의 뿌리를 흔들고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한국에도 8개 교단이 가입이 되어 있네요...

    기독교 장로회, 예수교장로회, 기독교감리회, 성공회, 구세군, 복음교회, 정교회, 기하성



    보동 기장, 예장 이라고 하는 한국교회의 큰 축이

    가입이 되었네요...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기장, 예장에 다니시는 분들

    본의 아니게 WCC에 가입되어서 순수한 복음을

    흐리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네요... ㅜㅜ

  8. Blog Icon
    궁금하네요

    불교 이슬람 등등에도 관대하다는 얘기는 왜곡된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찌하여 정교회나 로마 카톨릭교같은 곳들과 교제가 긍정적으로 있는 것인지요?

  9. 안녕하세요 궁금하네요님
    원래 교회는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을 하면서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분리가 되었습니다. 1054년 동서교회의 완전한 분리, 1517년 종교개혁으로 인한 구교와 신교의 분리 등 크게 세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떻게 우리가 나눌 수 있냐는 것입니다. 신학적 견해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주님의 몸을 우리가 찢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동서 교회가 1965년 로마와 이스탄불에서 서로 용서를 했고 1991년 로마교회와 루터교회가 상호의 차이를 존중하며 칭의의 견해를 합의했습니다. 종교간의 대화도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간의 협력과 대화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협력과 대화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루어 가는 것이지 통합은 아닙니다.

    평화 :-)

  10. Blog Icon
    david choi

    십시다. "제3차 WCC총회(1961년 뉴델리)에서 노골적으로 배교가 시작됐다. 당시 루터란 신학자 죠셉 시틀러가 총회에서 연설한 이후 그리스도에 관한 WCC의 기독론에 변화가 생겼는데, 시틀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교리는 우주의 교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구속뿐만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의 구속도 동반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우주 자체가 하나님의 활동무대이고 우주와 모든 자연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상호 보살피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게 된다. 거기서 나온 것이 “우주적 그리스도”란 개념이며, 그 개념에 의하면 “우주적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보편적으로 감지될 수 있는 창조의 중보자라고 주장하면서 범신론이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11. Blog Icon
    david choi

    그래서 다른 종교인들이 구태여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지 않더라도 WCC는 그들과 통합이 가능한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종교통합을 위해서는 만인구원설이 정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로마카톨릭은 WCC와 보조를 맞추면서 WCC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이 두 그룹은 같은 뜻을 가지고 멍에를 같이 메게 되었다. 그리고 회가 거듭될수록 그들의 배교는 극에 달하게 되는데, 제6차 WCC 총회에서는 개회식 때 캐나다 원주민의 종교행사도 곁들여야만 했다. 그들의 종교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이다. 개회식 때 그들의 종교적 주문도 암송하며, 북과 노래와 춤에 맞추어 그들의 정결의식도 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WCC 총회역사상 최초로 무신론자를 초청하여 총회에서 메시지를 전하게 하였다"(박재권 캐나다 주재기자)

  12. Blog Icon
    david choi

    위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이 계시록의 정치,종교,경제가 통합된 one world government, 그리고 그 위에 앉을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무시해버리고 싶다면 할 수 없지만...
    아무튼 하나님보다 관대한 참람함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교회의 정결을 지키는 일은 고독하고 옹졸해보이고 왕따 당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면 돌아가 당신의 농장과 사업을 의지하십시오." - 찰스 스펄전 -
    이것을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논쟁으로 치부하는 것은 손가락으로 해를 가리는 짓입니다.

  13. Blog Icon
    david choi

    그리고 하윤 아빠가 생각하는 교회의 정의를 들어보고 싶네요. 로만캐톨릭의 public belief 에도 구원이 있다고 믿습니까?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로마캐톨릭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가 아니겠지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고전 1:2"). 그렇다면 그들은 사랑으로 복음을 전할 대상이지 교제할 대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성경은 해석이 필요없는 아주 분명하고 쉬운 말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고후 6:14-7:1).

  14. 저는 하윤이 아빠가 아니라 하율이 아빠입니다
    제 딸의 이름을 바꾸지 말아주세요
    골로새서 1장 16-20절이 제 대답입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니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도 다르겠지요
    허나 저는 David Choi님 틀렸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15. Blog Icon
    david choi

    "다름"과 "틀림"이라고요? 하나님보다 더 관용이 많은 데요? 그리고 wcc가 종교통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소경이 아니면 보입니다. 워낙 유명한 목사님들이고 신학자인데 어떻게 그들이 잘못볼 수 있겠냐구요? ㅎㅎ 발람도 매우 유명한 선지자였죠. 축복하고 저주하는대로 된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졌있었고, 모압왕 발락이 특별히 엄청난 부와 명예를 댓가로 선발한 선지자였으니까요. 그런데 당나귀가 보는 여호와의 천사도 보지못한 소경이 된 것을 기억하

  16. Blog Icon
    david choi

    "다름" 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틀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 구원의 복음과 믿음에 직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 1:8, 개정)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개정)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7. 종교단일화 물론 좋죠 평화롭게 하나의 하나님을 섬기자는데 누군들 싫어하겠습니까? 그러나 그안에서 움직이는 것들 즉 그 열매들을 보면 이게 잘 자라는 나무인지 아니면 악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한마디로 그 싹을 보면 알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현재 WCC 본인들은 그저 우리는 교회의 통합니다라고 하는데 윗댓글중에 로마카톨릭도 개신교도 다 하나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왜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했을까요? 바로 잘못 이끌어지고 있는 로마카톨릭 성직자들로 부터 진정한 주님의 개획이 무엇인지 깨닫고 변화하고자 하였던겁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이땅에 오셨나요? 잘못된 사두개인 바시새인들의 부패와 말씀뿐이던 잘못된 종교를 바로 잡고자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 종교를 하나로 통일하셨나요? 아니요 오히려 확실하게 구분을 지었습니다. 단지 허울좋게 모두가 하나되자고 하지 않으셨죠 정작 그들은 그렇게 말하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목사들과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고 그들이 다 예수님 같을까요? 물론 연합은 좋죠 하지만 거짓선지자와 잘못된 선생들과 통합은 다시 예수님이 오시기 전 혹은 마틴루터가 목숨을 걸고 시작한 종교개혁 이전으로 다시 돌리려는 정말 답이없는 허울만 좋은 상술이죠.

  18. 늘 이런 댓글이 달릴 때마하 먼저 이야기 하는 것이 있는데요, 그거은 ‘WCC는 종교통합을 하지 않습니다.’ 입니다.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 종교간에 대화는 필요하다라고 주장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길게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http://oikoumene.tistory.com/35를 읽보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있는 다른 글들을 몇 개만 읽어 보셔도 충분히 궁금하신 것들을 해결 할 수 있을 겁니다.
    평호 :-)

  19. 십계명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20.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을 권유해 드립니다
    꼭 한번 읽어 보세요.
    평화 : -)

  21. Blog Icon
    객장

    에큐메니칼 운동을 종교단일화 그리고 종교 다원주의로 곡해 하시려는 분들이 많군요

  22.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국교회가 새롭게 변화되고 정말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원한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 드려야 할 것인데 말이죠...
    에큐메니칼이 꼭 진리는 아니지만 새로운 통찰을 주는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23. 박교수! 말라기 2장 2~3절을 읽어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