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오이코스 여름학교 기독공보에 실려

2014.09.07 09:30

지난 8월 18-21일 장성 한마음자연학교에서 열린 ’2014 오이코스 여름학교’가 기독공보에 실렸습니다. 거기에다 제가 찍은 사진이 기독공보에 실리는 영광(?)까지 얻었습니다. 생명, 정의, 평화를 향한 신학도들의 순례의 여정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한 함께 동참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아래 기사를 꼭 한번 읽어 주세요. :-)

  

'오이코스 신학운동'은 지난 8월 18~21일 전남 장성 한마음자연학교에서 '성경과 함께 떠나는 정의ㆍ평화의 순례'를 주제로 오이코스 여름학교를 개최했다. 
 
김은혜, 박성원, 신재식, 장윤재, 정경호, 정원범, 황홍렬, 최광선, 최상도 교수가 강사로 참여한 가운데 본교단 산하 신학대 및 청년 60여 명이 참가한 이번 오이코스 여름학교에서는 제10차 WCC총회에서 기독교인들의 삶의 모습으로 제시된 '정의와 평화를 위한 순례'에 대해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갖고, 생명밥상, 탈핵운동, 포괄적 공동체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강의가 진행됐다.  


하율이 아빠 Oikos/Oikos Letters

에볼라와 21세기 선악과

2014.09.01 13:00

세계보건기구(WHO)가 이와 관련하여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지금 세계는 치사율에 육박하는 에볼라(Ebola)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에볼라는 콩고의 에볼라란 마을에서년에 처음 나타난 바이러스로 인간에게 처음 나타난 바이러스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넓게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이슈가 되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동시다발로 나타나고 세계 다른 지역으로까지 퍼질 염려가 있으니 난리들이다. 그런데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년대 중반에 카나다 의학계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원인규명을 해서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후 에볼라가 심각하지 않아 이 연구는 흐지부지되었거나 감추어진 것 같다. 그 연구에 따르면 에볼라는 원숭이를 통해 매개된 것 같은데 인간이 아프리카 깊은 밀림지역을 마구잡이로 벌목하면서 파괴하니까 이 바이러스가 원숭이에게 잠입하고 인간이 감염원숭이와 접촉하면서 인간에게 옮겨진 것으로 본다는 분석을 한 것 같다. 그렇다면 에볼라는 바로 인간의 생태파괴에 대한 질병인 셈이다.


90년대 말 세계는 새천년을 맞이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을 때인데 2000년 1월 둘째주일 인류는 새 천년을 어떤 자세로 맞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설교를 제네바한인교회에서 한 적이 있다. 이 설교에서 에볼라에 관한 언급을 할 부분이 있어서 겸손한 마음으로 나눈다.


새 천년과 선악과

본문: 창세기 3:1-19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어라!” 이것은 제네바에서 시작된 개혁교회 - 한국에서는 장로교회라 부름 - 가 강조하는 신앙의 본질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한손에 신문을 들라는 것은 “때의 징조를 분별하라”는 마태복음 24:3의 말씀대로 항상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살피라는 의미이고 다른 손에 성경을 들라는 것은 그 시대에 향해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지 분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온 인류가 기다리던 새 천년이 밝았습니다. 새 천년이라고 해서 어제와 전혀 다른 시대가 온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새 천년이 되면 인간의 삶이 여러 면에서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21세기, 새 천년은 “정보화시대가 될 것이다.”, “감성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식사회가 될 것이다.” 는등 많은 예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만 이 모든 예견들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두 가지의 상반된 예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하나는 21세기에는 획기적인 과학기술의 발달로 아주 살기좋고 편리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더 많은 재앙과 혼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미래를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한 손에 신문을 들라는 말대로 오늘 현실의 징조가 무엇인지 살피고 다른 손에 성경을 들라는 말대로 이 시대의 징조에 대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분별해야 새 천년에 대한 바른 삶의 지표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I
그럼 먼저 신문을 들어보십니다. 오늘 세계 현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 세계에는 두 가지 지배적인 교훈(Discourse)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위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흐름을 주도하는 교훈입니다. 세계화는 모든 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그 주도는 경제세계화가 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등 세계경제기구 주역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만 이 흐름의 배경에는 이런 사상이 있습니다.

이 세상과 인간의 개발은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끝없이 발전할 수 있으며 무역과 시장을 자유화하면 경제가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고 경제가 발전하면 세계는 가난에서 해방되고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시장을 완전 자유경쟁 시킬 때 가장 잘 성장한다는 소위 자유시장 (Free market) 경제 논리를 내세워 모든 무역장벽을 없애고 전 세계를 완전 무한 자유경쟁으로 몰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사고입니다.

신자유주의를 학문적으로 전면에서 주도하고 있는 학자중에 일본계 미국인 프란시스 후구야마(Francis Fukuyama)란 학자가 있습니다. 후꾸야마에 의하면 역사를 움직이는 힘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경제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경제를 완전히 자유롭게 발전하도록 놓아두면 경제가 자연히 역사를 발전시키고 인간의 문제도 완벽하게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세계화가 바로 이 방안이란 것입니다.

둘째로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투쟁력’ (Struggle for recognition)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그 투쟁력이 바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인정받고 싶어하는 투쟁에는 자연히 인간의 갈등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인간본성을 바꿈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공학, 특히 신경약물학에서 연구하고 있는 리탈린(Ritalin)이나 프로작(Prozac) 같은 정신순화약을 투입하면 인간의 거친 본성이 순한 본성으로 개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약물을 투입하면 남자나 여자나 모두 순한 양처럼 성격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후꾸야마는 이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본성이 개조되면 인간은 인간의 영역에서 신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고 인간에게는 불행의 역사가 더 이상 없는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허망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이 사람의 논문이 세계 학계에서 심도있게 토론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이론에 반해서 제기되고 있는 또 다른 하나의 교훈은 ‘인간의 개발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지구의 자원은 한계가 있고 인간의 기술과 과학은 무제한으로 오만방자하게 발전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개발하면 제한된 지구 자원이 얼마 안가서 거들나며 우리 후손들은 사막화된 지구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기후가 자꾸 올라가는 지구온난화 (Global warming)는 인간이 생산해 내는 가스가 한계치를 넘어 오존층을 파괴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앞으로 이 가스의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 자체가 위협당할 수 있다고 유엔 세계기후회의(UN World Climate Conference)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정말 제가 1986년 처음 제네바에 왔을 때는 자동차 에어콘이나 선풍기가 필요없었는데 요 몇 년 사이에는 이것 없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더워졌습니다.

이처럼 지구 자원과 인간기술의 발전, 부의 축적에는 한계가 있어야 하며 그 개발도 세계가 지속가능한 범위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인간과 세계는 무한정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와 인간의 기술 개발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이 두 논리가 바로 오늘 신문에 실리고 있는 시대의 징조입니다.

II
그러면 이러한 세계 현실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성경은 바로 창세기 3장입니다. 창세기 3장에 따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동산 한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 놓고 ‘동산에 있는 다른 나무의 실과는 다 먹을 수 있으나 이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가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뱀이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처럼 되고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하와를 유혹합니다. 하와가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것도 같아서 자기가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반대였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기 보다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죽 모든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안에서 늘 논쟁거리가 되었던 말씀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을 아셨을텐데도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이 죄를 짓게 하셨는가?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함정을 만들어서 인간을 시험하셨는가? 선악과를 만들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꼬이지 않았을 것 아닌가?’ 등 수많은 원초적인 의문을 제시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문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이 선악과의 이야기를 오늘 끝없는 부의 추구, 끝없는 기술의 추구, 끝없는 개발의 추구가 이제는 부매랑이 되어 생태계를 위협하고 우리의 존재자체를 위협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읽어보면 너무나도 정확하고 심오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 속에 스며들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III
그럼 이 말씀은 오늘 21세기 문턱을 들어서는 인간문명에 과연 무슨 계시를 하고 있습니까? 이 선악과의 말씀이 딜렘마에 빠진 20세기 인간문명에 대해 하는 말씀은 바로 ‘인간의 욕심과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질주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발전은 무한하며 인간은 한없이 부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등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주역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뱀의 유혹처럼 정말 달콤하게 들립니다. 그 논리를 듣고 있으면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느꼈던 것 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입니다.

우리 한국사람은 이를 세계의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아시안 타이거 중의 하나로 경이적인 경제성장의 모델이었다고 추앙받아왔던 신화는 하루 아침에 무너졌습니다. 멕시코,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러시아, 브라질을 차례대로 강타한 경제위기는 국가경제구조의 취약성때문만이 아니라 경제세계화가 안고 있는 위험성이라면서 세계 어디에든지 찾아 올 수 있는 타격을 이들 나라가 먼저 당한 것이라는 분석이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의 경우, 경제기반의 30%가 무너졌고 부실기업이 도산한 것은 물론, 국가기간산업까지 포함해서 상당히 건실한 기업들이 헐값으로 외국자본에 팔린 상태입니다. 지금 한국정부는 경제위기가 이미 극복되었다고 선전합니다만 제가 지난 11월 세계 경제학자들과 함께 한국과 태국에서 경제회의를 했는데 외환보유액, 증시, 환율등은 그렇게 나타나는 듯 하지만 밑바닥 경제는 그렇지 않고 있고 학계도, 서민들도, 소수를 제외한 기업인들도 다 이렇게 보고 있었습니다. 경제위기이후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되고 범죄율과 자살율은 30% 이상 증가하고 사회불안율도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났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후꾸야마의 논리는 그야말로 망상입니다. 인간역사에 경제가 적지 않는 역할을 하긴 하였으나 인간 역사의 발전은 결코 경제만으로 이루어 져 온 것이 아닙니다. 많은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의 몰락에 이어 만약 자본주의가 이대로 간다면 자본주의도 그 끝을 비참한 모양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끝을 모르고 치닫는 탐욕적 경제, 잘못된 인간의 가치관이 그대로 달린다면 인류와 세계의 미래엔 더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약물로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에이즈나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고칠 약품도 계발하지 못하고 있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는 마약문제로 점점 더 심각한 상태에 봉착할 것입니다. 지금 아프리카에는 에이즈(AIDS)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짐바브웨 같은 경우에는 일주일에 700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이 에이즈(AIDS)외에도 걸리면 2일내에 즉사하는 에볼라(Ebola)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연구해 보니 이런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바이러스(Virus)는 깊은 밀림속에 살고 있었는데 인간이 목재체취를 위해 밀림을 밀어버리니까 그 미생물이 살 곳을 잃어 원숭이 속에 들어가고 그 원숭이를 통해 인간에게 전염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현상들은 인간개발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IV
그러면 전혀 개발하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많은 나무의 실과는 마음대로 따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유가 주어져 있되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에볼라(Ebola)와 같은 바이러스의 출현을 저는 생태계 질서를 파괴한 결과의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살도록 주어진 영역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먹고 살도록 자유가 주어졌으나 그 자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 먹지 말라는 그 실과까지 따 먹는 오늘날 인간의 무소부위의 개발은 생태계 질서 파괴를 불러오고 이 결과로 오는 자연의 무서운 재앙앞에서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루게 될 것입니다.

이는 경제에도 적용됩니다. 인간의 부(富)가 끝이 없이 추구되면 그 다음에는 마태복음 6:24 말씀대로 재물을 신으로 섬기는 소위 물신사상(物神思想: Mammonism)이 싹트고 그렇게 되면 돈이 인간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돈을 섬기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개발을 자제해야 할 한계가 무엇인가? 저는 이 개발에 대한 과학적인 한계는 모르겠습니다. 과학기술의 개발, 생명공학의 개발, 어디까지 가야하나, 그 한계는 과학자가 아닌 저로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적 원칙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원칙은 바로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나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난 뒤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이 결과는 다름아닌 모든 관계가 깨어져 나가는 결과였습니다.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심판자와 죄인의 관계로 바뀌어져 버립니다. 그 다음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도와주도록 맺어진 사이였으나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배신의 관계로 변합니다. 셋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원래는 사람이 수고하지 않아도 땅이 먹을 것을 제공하도록 창조되었으나 인간이 땀흘려 경작해야만 땅은 곡식을 내고, 그것도 순순히 곡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엉겅퀴를 내면서 방해한다고 하였습니다.뱀은 인간의 뒷 발꿈치를 물고 인간은 뱀의 머리를 밟아 죽이는 관계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비극적인 결과에서 우리는 인간의 개발은 어디까지여야 하느냐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개발은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하기 전”까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깨어지고 있으면 ‘한계가 왔구나’하고 절감해야 합니다.

몇 년전에 미국에 공부하라고 보낸 아들이 신용카드를 마음대로 못쓰게 한다고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부모를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한국에서 있었는데 이것이 한계를 넘어 관계가 깨어지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면 돈의 축적은 여기에서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V
우리 인간은 이제 무작정 개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움속에 사는 멋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몇 년 전에 ‘아름다운 푸름(La Belle Verte)’란 불란서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자연과 인간의 진실을 파괴하는 산업화와 문명을 다 거치고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가 인간성을 회복한 다른 별의 외계인이 지구에 찾아와서 자기들이 걸었던 길을 똑 같이 걷고 있는 지구의 문명에 경고하고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문명으로 바꾸도록 도전하는 영화였습니다.

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여성이 핸드빽을 들고 외출하려는데 외계인이 핸드빽에 담겨진 입술연지통을 보고 ‘이것이 뭐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보이려고 바르는 것이다.’라고 하니까 ‘왜 아름답게 보여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사랑받기 위해서’라고 지구여성이 대답합니다. 그러자 외계여성이 화장대위에 놓인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은 누구냐?’고 묻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하니까, ‘그럼 당신이 집에 있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입술연지를 안바르다가 왜 밖에 나가면서는 바르느냐?’고 묻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의 집 사람은 우리 가정이 그렇지 않나 상상하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은 한국가정의 보편적인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한국여성들은 집에 있을 때는 귀신같이 하고 있다가 밖에 나갈 때는 패션모델 저리가라 할 정도로 변해서 나갑니다. 요즈음 한국에 가보면 여성들이 화장을 많이 하는데 분을 너무 두껍게 발라서 우스워도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이상하게 웃는 부자연스러움을 보게 됩니다. 북한에 가니까 여성들의 피부가 화장을 안해서 그런지 정말 깨끗했는데 화장도 좀 자연스럽게 하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우리는 당연하지도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사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지금 인간이 날마다 개발하고 있는 것들이 전부 다 절실히 필요한 것이겠습니까? 필요한 것도 있지만 사실 필요치 않는 것도 많습니다. 앞으로 지구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우리 후손들도 쓸 자원을 남겨두기 위해서 이 세대의 인류는 검소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세계를 보면 기계적인 관계는 점점 더 넓고 견고하게 맺어지고 있습니다. 통신은 우주까지 연결되고 인터넷, 핸드폰등 기계적 관계는 정말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까지 무한정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인격적 관계는 어떻습니까? 점점 멀어지고 있고, 약해지고, 끊어져 가고 있습니다. 순수한 인간관계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익과 관련된 억지관계만 있는 듯 합니다. 2000년 동안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로 이루었지만 인간은 진보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악적 근성이 오늘 인간에게도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21세기에 인류가 최대로 기울여야 할 노력은 바로 깨어진 “관계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중대한 선교적 사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관계회복, 즉 인간의 죄악으로 사이가 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하나님의 창조세계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길이 곧 인간이 진보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런 의미에서 창세기의 단순히인간의 자율성을 제한하는금지조항(禁止條項)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하시기 위해 만드신 안전장치(安全裝置, Security)입니다. 새천년을 맞는 인류는 무엇을 할 때 마다 이 말씀을 염두에 두어야 인간다음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000년 1월 16일, 제네바교회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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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게 쓰는 편지

2014.09.01 09:00

2014년 오이코스 여름학교가 끝나며 참가자들이 메시지를 준비했습니다. 3박 4일동안 모여서 함께 웃으며 생각을 모으고 공감을 나눴습니다. 그 결과가 아래에 있습니다.






성경과 함께 생명정의평화의 순례를 떠나며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안녕하세요? 

저희는 2014년 8월 18일부터 21일까지 장성 한마음자연학교에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키기 위한 신학을 추구하는 오이코스 신학운동이 개최한 오이코스 여름학교에 참가한 학생과 교수들입니다. “성경과 함께 떠나는 생명정의평화의 순례”란 주제로 열린 금년 여름학교에서 지금 우리 사회와 교회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나누고자 이 편지를 띄웁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소외된 자의 편에서 예언자적 선포로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며 희망을 주려고 노력해온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한국교회는 우는 자와 함께 울기보다는 권력과 재물을 가진 자편에 서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엄청나게 아파하고 고통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시급히 동행해야 할 때입니다.


2014년 봄(春, spring)은 긍휼이 필요한 피울음을 봄(觀, seeing)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라앉는 세월호를 보며 우리의 탐욕을 생명과 맞바꾸어 왔던 현실을 보았습니다. 

4대강 개발을 통해 찢겨진 생태계의 피울음도 들었습니다. 


밀양 송전탑이 사람에게도 환경에게도 무자비하게 건설되는 것을 통해 약자와 자연의 피울음을 들었습니다. 


핵무기와 핵발전이 주는 거짓된 평화 속에서 위협당하는 모든 잠재적 피폭자의 피울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군대 폭력 사건을 통해 공동체의 사랑과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져 고통 받고 있는 자의 피울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아픔 가운데 우리 한국교회가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하나님의 물으심 가운데 응답하며 나아가고 있는지 진솔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은 오늘의 우리 한국교회가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 한국 교회가 우리의 기준대로 이웃을 선별하고, 그들을 단순히 수혜자로 만들어 주변인으로 소외시켜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웃을 선별할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이웃이 되셨던 예수님을 제대로 따라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요?


죽은 아들로 인해 슬픔에 빠져있던 나인성 홀어머니의 이야기는 세월호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회 속에서 한국 교회가 감당할 일들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무에 올랐던 삭개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던 혈루병 여인,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던 바디매오의 이야기는 한국교회를 향한 이웃들의 울부짖음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제는 이웃을 찾지 말고, 이웃의 요청에 응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웃에게 말하지 말고, 이웃의 목소리를 들어보아야겠습니다. 


이제는 가만히 있지 말고 이웃과 함께 생명정의평화의 순례를 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의 피울음을 들으셨고, 응답하셨으며, 함께 걸으셨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주변에는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 


몸살을 앓고 있는 4대강, 


밀양송전탑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과 무너진 생태계, 


핵개발의 기만으로 죽음의 여행을 하는 이들, 


비인간적인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군인들.


그리고 구조적인 불의와 가난과 폭력에 짓눌린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체들이 흘리는 피울음과 신음에 함께 울며 긍휼을 가지고 이들의 이웃이 되는 거룩한 발걸음을 함께 떼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이들의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희들은 이번 오이코스 여름학교에서 우리의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세월호 사건이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 생존자들의 요구에 따라 투명하게 해결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연대할 것. 


둘째, 4대강 개발의 폐해에 대해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나누며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해 함께 성찰할 것. 


셋째, 밀양 송전탑 건설과 핵발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미래세대와 창조세계를 위한 복음을 이야기하고, 주민들과 함께 연대할 것. 


넷째, 생태계의 파괴를 아파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삶을 모색할 것. 


다섯째, 군대 내 폭력 재발방지를 위해 지역 군부대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장병들과 연대하고, 형제애가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고 행동할 것.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위해 한국교회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교역자와 성도님께서 진심어린 눈물로 기도할 것. 


저희들은 신학도로서 한국교회 공동체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하나님의 생명과 정의,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성경과 함께 이 순례의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실천들을 통해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지체들과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나아가는 것이 이 아픔의 시대에 우리가 응답해야 할 기도이며 증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생명정의평화의 순례길을 우리 한국교회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함께 떠나실거죠?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의 순례길을 인도하실 것임을 믿고 떠나는 이 순례길이 아픔과 불의와 폭력과 죽임의 세상을 하나님의 생명과 정의, 평화가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할 것입니다.


2014년 8월 21일

장성에서 오이코스 여름학교 참가자 일동 올림





하율이 아빠 Oikos/Oikos School 여름학교, 오이코스

개신교와 가톨릭

2014.08.19 01:00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에 대한 관심이 높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어떻게 해서 하나였던 교회가 둘로 나눠지게 됐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안탑깝게도 현재 한국교회 안에는 가톨릭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너무나 많이 있어서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굳이 일일히 내용을 언급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마리아 숭배라든지, 가톨릭이 이단이라든지 등등...


이러한 분들을 위해서 광주다일교회에서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었습니다. 호남신학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시고 계시고 독일에서 종교개혁사(루터를 중심으로)를 전공하신 홍지훈 교수님을 모시고 "개신교와 가톨릭"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약 1시간 가량의 짧은 시간의 세미나였지만 개신교와 천주교의 차이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를 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되어집니다.




하율이 아빠 신학앎

  1. 이 강론에서는 오류가 있네요 첫번째로 카톨릭이 이단이 아니다? 그렇다면 연옥이라는 카톨릭만의 믿음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 바탕인가요? 성경어디에도 연옥에 대해서 아니 비슷한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마틴루터가 꼭 자신의 교리를 펼치기 위해서 그때 당시의 시대적배경을 바탕으로 종교 개혁이 이루어졌다고 돌려말하시는데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짓으셨을까요? 물론 마틴루터가 예수님은 아니지만 마틴루터는 그 교황 및 성직자들의 모습에서 그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리 행한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카톨릭은 1500년시대 이후 변화가 되었나요? 성경에 공회를 만들고 모든 교회를 한사람에 의해서 움직이라고 하셨나요? 참고로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것은 하늘의 아버지와 친부뿐이지만 카톨릭은 성직자들을 FATHER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교황을 그리고 그외의 성직자들을 거룩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과연 사람이 성스러워질수 있고 신격화 할수 있나요? 카톨릭교리중에 오로지 베드로의 제자들만 교황의 자리에 오를수 있다면서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12제자는 아무도 아니고 오로지 베드로만이 의로운 사람인가? 성경에 베르로가 반석으로 그 위에 교회를 지은다고 해서요? 그렇다고 한다면 당신들은 그저 유대교인들과 다를게 없는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것은 신성 거룩함 이러한것들이 한 족속 한 민족 혹은 당신들이 말하는 베드로의 직계제자들 이러한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 우리의 믿음으로 죄를 자복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모두가 그리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톨릭은 그것을 부인하죠 왜냐면 계급주의적으로 교황 성직자 성도 그런식으로 구분을 짓고... 아무튼 그렇게 자신있게 카톨릭이 개신교와 같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연옥을 어떻게 설명하며 또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덕을 내가 받아올수도 있다는 교리를 설명해 보세요 이러한 것들이 틀린거지 단순히 그 뿌리가 같은데 사람의 생각차와 시대적 부패가 둘을 갈라놓았다고 말하지 마시고요 잘 알지못하는 사람들을 그런 맞지도 않는 지식으로 현혹시키지 마시고요.

  2. 루터는 본인이 의도했던 것은 종교개혁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에 비춰서 가톨릭 안에 미신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비판을 했던 거였고 교황과 로마교회가 루터를 압박했을 때 솔직히 뒤로 물러 선 것은 사실입니다. 변명을 했지요. 그럼 종교개혁은 어떻게 되었냐면 이미 95개의 반박문이 유럽으로 퍼져나가서 종교개혁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고 루터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이 내린 결론입니다. 물론 님께서 지적하신 당시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부정과 부패는 비판받아 맞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개신교와 가톨릭을 비교한다면 500년 종교개혁측과 가톨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개신교는 정말 종교개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고 가톨릭은 2차 바티칸 공회 이후로 교회가 가야 할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든다면, 조용기, 홍재철, 전병욱, 오정현 목사등 나름 한국교회 안에서 영향력이 있고하 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 500년 전 루터가 비판을 했던 주교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에 반에서 예수회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종의 행적을 보면 예수님이 아프고 병든자를 고치고 그들을 안아 주셨던 것처럼 그도 행동하고 가톨릭 교회도 그렇게 행동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어서 가는 천국을 이야기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내세사상과 기복신앙으로 사람들을 현혹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삶을 살아야 진정 성경의 말씀을 지켜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사를 신격화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한 사람이 있으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직제에 대해서는 제가 자세히 알지는 못해서 뭐라고 답변을 드릴 수 없지만 먼저 신부가 왜 영어로 ‘Father’라는 단어를 사용을 하냐면 초대교회 이후로 교부시대에 들어 가면서 ‘Father’라는 단어가 교회 속으로 들어 온 것입니다. 이 교부를 라틴어로는 ‘Patres Ecclesiae(파트레스 에클레시에)’라고 하는데 이것을 영어로 ‘Church Father’라고 번역을 했고 우리는 ‘교부’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저는 로마 가톨릭이건, 정교회이건, 개신교인건 성직자를 존중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을 하지만 신격화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의 생각에 어느정도 동의(신격화 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Father’를 신부의 ‘Father’와 같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님의 주장의 맥락을 따랐을 경우 우리는 기독교의 기초를 닦은 위대한 교부들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에 이어서 제가 아는바로는 베드로의 제자들만 교황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틀린 주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황’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생겼났고 정착이 됐는지를 여기서는 다룰 수 없어서 다 설명 드리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하루만에 꿰뚫는 기독교 역사’라는 책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동서교회 분리과정과 몇 가지 사건으로 ‘교황’이라는 용어가 생기 된 것을 잘 설명해주 주고 있습니다.

    이제 제 의견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전파되어진 지역에서 그곳에 맞게 변한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과 북한이 반세기 동안 분리되어 살면서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한겨레라는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떨어져 살던 여러 교회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 만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즉 본질은 지켰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톨릭이건 정교회건 개신교인건 서로가 봤을 때 성경적이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비본질적인 것에 집중을 하는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에 집중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좁고 너무 배타적으로만 바라 보시지 말고 조금 더 넓게 조금 더 너그럽게 나와 다른 기독교를 바라 봤으면 합니다.

    “본질적인 것에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 자유를,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사랑으로.”
    님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평화 :-)

  3.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전 현재 신학을 공부하고 또한 여러가지 위치에서 개신교 목사들의 잘못된 점도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사람이며 위 답변에서 말씀하신것처럼 대형교회의 목사들의 잘못을 알며 수년전부터 우리 개신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느낀사람중에 한사람입니다. 현재 전 기독교인의 두얼굴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준비중이며 여러가지 자료를 찾던중 우연치않게 들어와서 이글 저글 읽어봤습니다.
    우선 답변에서 부족함을 찾자면 제일 우선시 되는 카톨릭의 믿음의 주체와 구원의 방법입니다. 개신교는 오로지 본인의 회개와 믿음으로 되는 칭의라는 개념이 있고 오로지 믿음만이 구원의 주체가 되며 구원은 오직 예수님으로 부터 온다입니다. 그런데 동영상에서 말씀하신것처럼 카톨릭은 전혀 성경에 나오지도 않은 연옥이라는 개념이 나오고 누구든지 죽어서도 내가 아닌 내주위의 사람이 나의 죄에 대한 용서를 빌고 덕을 쌓은 사람에게 덕을 받아오면 천국에 갈수 있다는게 주된 교리인데 이게 과연 맞는것인가요? 이런 주장을 하는 종교가 이단이 아니면 뭐가 이단인가요?
    다음으로 요즘 대형교회들 문제가 참많은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세상을 다니며 선교 활동도 하고 교회도 지어주고 가난한자들 못먹고 못입는 사람들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답글에서는 그들은 죄만 짓고 다니는 사람인것 처럼말씀하시고 오로지 프란치스코 교황만 올바른 선을 행하다고 말씀하시는것 같아서 동의 하기가 힘드네요 카톨릭 역시도 그안에서 온갖범죄가 생겨나고 그러나 자신들이 묵인하고 세상에 알리지 않아서 그렇지 간혹 주교들의 아동성범죄가 종종 뉴스로 올라옵니다. 그외에도 많을거라 생각하지만 워낙 잘 만들어진 구성 집단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무마하고 넘어가는게 많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뭔가 올바른 것을 봐야지 단순히 이치에 맞추고 세상살이에 맞춰서 내가 보고자 하는것만 본다면 그건 장님이 코키리 코만 만지고 코키리를 표현하는것 처럼 과연 우리가 내생각으로만 예수님을 생각하고 내 생각에 맞춰서 이럴꺼야 그러니 여러분도 이렇게 믿으세요 이건 양치기로써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번더 성경을 보고 진정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도 열매가 없는 나무는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본질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평화와 자유만 찾는다면 자기합리화와 자기만족에 빠져서 진실이 무엇인지 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4. 아하 신학을 공부 중이시군요. 댓글이 젠틀한 이유가 있군요. 앞으로는 전도사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

    홍교수님의 강의 중에서 나오는 연옥의 유래를 다시 한번 들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당시 가지고 있었던 신학과 세계관의 한계 내에서는 연옥이라는 것은 신자들에게 ‘누구나 바른 신앙생활을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 같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강의를 들어 보면 연옥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히 언급을 하지만 천주교 또한 행위를 중요시 하는 만큼 믿음의 중요성도 강조를 한다고 설명을 합니다. 그렇다면 전도사님께서 현대의 가톨릭이 연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시면 천주교 신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 직접 한번 물어 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저는 가톨릭을 대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조금 적어 보자면 1990년 가톨릭과 루터교는 칭의교리에 대한 신학적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goo.gl/qvayPJ”를 참고해 주세요. 그 기사의 일부를 발췌 하자면

    “즉, 가톨릭은 ‘오직 믿음’의 차원에 ‘사랑’과 ‘소망’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역시 ‘구원’(이신칭의)은 결코 ‘성화’(사랑과 소망)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루터교는 ‘이신칭의’와 ‘성화’는 구별되지만 분리는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종전보다 ‘성화’를 더 강조했다.”

    가톨릭도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세계감리교와 세계개혁교회연맹(장로교 연합단체)는 이 신학적 합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습니다. 이것은 세계교회의 주 흐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 신학과 교리에서 각 교회들간의 이견의 차이는 있지만 가장본질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한다면 우리는 모두다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가톨릭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뭐라고 답변을 못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자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칭찬을 한 것입니다. 이해 반해 한국 개신교는 개교회주의가 강하기는 하나 교단이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전 댓글에서 언급했던 목사들의 잘못이 발견이 되었으면 교단 차원에서 반응을 하고 자정하려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꼬집은 것입니다.

    논문 잘 준비하셔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좋은 대화오 토론은 환영입니다.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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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선

    개신교는 일단 교리는 맞다고 봅니다. 다만 신자들이 더러운 짓들을 해서 그렇지요. 저도 크게 죄인이구요.

    저도 한때는 진리를 찾아서 개신교에서 발을 빼고 천주교로 가려했었습니다. 1년간을 평화방송 미사 일요일날 교회 끝나면 집에서 드리고,
    정말 지극정성으로 꼬박꼬박 챙겨서 했었네요.
    개신교의 성의 없는 믿음생활과 친절한 냉대에 질린 반면에
    천주교는 어딘가 화끈하고 보다 성의있게 열심히 신앙생활들 하고
    무엇보다도 나 역시
    성당에서 두어번 미사를 드리면
    어딘가 정신적으로 신앙심이 더 깊이 들고 그랬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원인은 바로 책인데요.
    <성스러운 호소>를 보고는
    주님께서 개신교는 마다하고 천주교에 역사하여 주신다, 하여 천주교로 옮기게 되었던 거예요.

    그렇게 기회를 봐서 천주교로 옮기려고 했었습니다.
    도대체가
    매일미사나 묵주기도 내용이

    너무너무 힘들었는데도 그렇게 1년간을 했었네요.

    내가 전에 입원했던 병원에서도
    천주교 신자 언니 한명이 저를 그렇게 잘 챙겨주었고
    퇴원 후 집에서 인터넷을 하는데
    댓글로 알게 된 정 엘리사벳 자매님께서도 저를 그렇게 잘 챙겨주시더라구요.

    정말 천주교 신자들은
    대게가 개신교인들더러

    병신이니 개독이니 나한테도 수없이 욕들을 했지만

    정말로 신앙심이 대단하신 분들은 저렇게 남을 잘 챙겨주고 겸손하고 친절하시다고..어떻게든 착할려고 하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천주교만 가려하면

    이상한 나쁜 일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평화방송 채널만 언제부터인가 잘 안나오거나 방송사고가 나거나 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요인에 의해서

    나는 개신교로 뿌리박게 되었는데요.

    두번다시 절대 천주교로 가지 않겠다,

    그동안 모아둔 자료들 다 폐품으로 내놓게 되었습니다.


    후에

    저는 인터넷에서

    마리아가

    어느 여신 숭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평화방송 채널은 정상작동되었으며

    그러나 나는 이제 안봐도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 개신교인들은 남의 소유를 무시하는 못된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는 그들이 선택한 취미같은 소유물이죠. 착하게 살기 싫으면 불교를 버리면 됩니다.

    우리는 그런 장난이 허용이 안되는 거죠. 우리는 하나님에 속한 자들입니다.


    천주교 교리가

    하나님께 우리가 갈 수 없는 거,

    예수님께서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마리아님이 기도를 전달해준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마리아님이 우리의 기도를 전달해주고 설득해준다고.. 이게 말이 되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예수님 한분으로도 우리는 족하고 충분한 생수를 마십니다.

    마리아님이 왜 굳이 또 필요할까요?

    마리아님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정도의 믿음을 가지신 분은 아니십니다.

    그 정도의 믿음을 가지신 분이,

    완벽하신 믿음과 사랑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살아생전에 어머니셨어도.. 아무리 예수님을 낳았대도

    어머니로서 말도 함부로 못했습니다. 언제나 존칭을 쓰며 높여드렸는데요.

    아무렴 예수님이 마리아님보다 더 많이 알았으면 알았지

    그분이 마리아님한테서 뭘 배운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아무리 마리아가 설득해도

    예수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고 더 배워서 알게 되면

    언제나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물어나야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나는 생각하는데요.


    예수님은 마리아님이 설득이나 해줘야 우리를 봐주시는 그런 냉정한 분이 아니십니다.

    마리아님이 가기 전에

    우리한테 가장 먼저 달려오십니다. 그분이나 우리나 마리아님이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구끝까지 우리가 죽기까지도 절대 포기를 안하시는 분이십니다.


    뭐 우리가 죽고나서 예수님께서 못 도와주신다면..

    끝난 겁니다. 마리아님은 상관이 없습니다. 마리아님에 의해서 움직이시는 예수님이라면,

    마리아가 더 믿음이 세고 사랑이 깊고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아니죠. 말도 안됩니다.


    그건 예수님과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성당엘 가보면

    마리아 상 앞에서 모두가 기도를 드립니다.

    정말 내 생각에

    너무나도 바보같은 짓들입니다.

    마리아를 존경한다는데

    너무 바보같습니다.

    왜 존경하는데요? 대체 그분이 뭘 하셨다는 건지...?


    순결을 잘 지키셔서 예수님을 깨끗이 세상에 보내주신 일 말고는 한게 뭐 있다고 물론 그만도 정말 큰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보통 사람들 다 하는 거 외에 다른 건 크게 알려진 게 없습니다. 최소한 얼마나 대단하신 위인이시던간에,

    그렇게 예수님보다 더 높이 추대되며 구원자 이상의 최후의 영웅대접을 받으실 위인은 아니시라는 것이죠.

    이건 완전 도가 지나치거든요.

    하나님은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시는데요.

    묵주기도는 매일 반복해서 마리아에게 복제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마리아님께서 그걸 들으실까요?

    매일같이 세뇌하듯 복제기도 드림으로써

    예수님께로 가야할 신자들이 죄다 마리아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더 가까이 하며 그만큼 더 친숙함을 느끼면서
    예수님보다 마리아랑 더 가깝습니다.

    마귀의 책략인 거죠. 예수님과 연을 맺어야할 백성들이
    마귀로인해 예수님께고 못가고
    사이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마리아님도 천상에서 보시면서

    다들 왜 본인을 그렇게 숭배를 하지? 하고 안타까워하실 것 같으네요.

    성당에 가면

    우리를 구원하신 청년예수의 모습은 없고

    맨날 태어난 갓난아이를 받쳐들고

    더 높은 위치에 있는 마리아상이 가득합니다.


    정말 속으로 바보같다 생각했네요.

    대체 그 마리아가 뭔데?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면서 다들 상체를 조아리는 모습이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이런 말이 너무 우습습니다.


    존경은 예수님으로도 족합니다. 하나님은 감히 존경이라는 어설픈 개념을 들먹일 수가 없을 정도로 무서우시고 찬양받으실 분이시구요. 그나마 예수님께서 자신을 엄청 낮춰주셔서 우리가 존경이라는 것을 어설프게나마 감히 느낄 수 있는 건데요.

    평생동정이라지만,

    마리아는 예수님 아래로 동생들을 두셨습니다. 성경 4복음서에 나오구요. 그거 쓰신 분들은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들이 무사히 성경에 거짓말을 쓰게 결코 그냥 안두십니다.

    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정리해주신 것입니다. 그 책이 어떤 책인데

    하나님께서 미신이 들어간 7권의 외경을 허락하실 리 없습니다.


    십계명 제 2계명이

    이 세상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만물들의 형상을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간 모양의 인형들,
    동물 모양의 돼지 저금통들, 황금 두꺼비,
    미니어처들.. 다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알기로 복사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인쇄물보다

    자신이 직접 쓴 손글씨를 더 값어치 있게 여겨주시구요.

    한 사람 한 사람 개성을 존중하시고 사랑해주십니다.

    복제는 사탄이 만든 겁니다.
    우리는 오늘도 수없이 복제와 삭제를 컴퓨터에서 합니다.

    그걸로 세뇌되어

    인간경시, 생명경시의 정신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벌써 사람 신분을 모델넘버로 지정한 LG회사 (Lucifer is god, 또는 goat)나

    신한은행 두 가지를 제가 알고 있구요. 아마도 더 있겠죠. 어딘가에도요.. 시간나는 대로 다 찾아보려네요.


    마리아의 기도를 하는 성물들 있죠.

    뭐 우리도 그분을 본받아 열심히 기도한다는 논리같은데요.


    우리는 예수님 말고는 스승이 없습니다. 뭘 겉모양을 보고서야가 아니라
    내 정신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배우며 우러나와야 합니다.
    만일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른다면

    기도로써 간구하고 답을 구해야지

    우리는 신앙생활 만큼은
    같은 인간을 보고 배워서 하는게 아니라예수님한테서 배워야 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물론 어쩌다 참고적으로 내 옆 친구의 행동을 보고 잠시나마 한 순간 깨닫는 일은 있어도

    매번 그 우리랑 똑같은 어설픈 죄인을 갖다가 보고 따라하고 배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황.. 교황이 신의 대리자라는게 말이 안됩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합니다. 다 같은 죄악의 죄인입니다.

    마굿간에서 자라시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가난한 동내에서 온갖 못난이들과 함께 하신 예수님 앞에서

    본인이 황금빛 망토를 두르며 금관을 쓰고 고급 지팡이를 휘두르며 황제노릇으로 자신을 엄청나게 높이는 사람이

    무슨 신의 대리자인가요? 지금 그 사람은 그 패션들 다 벗어서 집어 내던지고

    당장 주님앞에 무릎꿇고 엎드려 빌어도 시원찮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고

    사람 위에는 바로 주님이신데,

    예수님도 자신을 낮췄는데,

    아무리 덜 익은 벼가 고개를 뻣뻣히 쳐든다지만,

    지금 같은 죄인끼리,

    누가 누구한테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고 애들 머리를 쓰다듬고 황금망토 두르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어설프게 흉내내며 황제놀이인가요?

    그 높으신 예수님도 애들 머리 안쓰다듬으십니다. 애들을 오히려 목마태워 더 높은 자리로 올려주시죠.


    천주교 자체가

    프리메이슨이 잡입한 종교입니다. 물론 신자들은 선량하게나마 모르고 믿음생활 하시겠죠.

    그들은 부모 대부터 그렇게 내려와서 믿는 경우가 많으십니다. 감히 그 종교를 떠날 생각을 못해요.

    자랑스런 천주교인이라지만,

    우리 인간은 자랑할 거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자랑이지

    종교 자체는 자랑거리 못됩니다. 어설픈 인간의 집단인 것이구요. 예수님께서 계시기에 빛나는 거죠.

    그들의 자부심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들은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이들은 또 다른 사람으로 봅니다.

    같은 천주교인들끼리도 쌍욕을 퍼붓고 싸우는 거 여럿봤구요. 뭐 신고한다느니 무서울 지경이었네요.

    하나님은

    교황도, 천주교인들도, 우리 개신교 죄인들도 그 외의 모두들 다... 사랑하십니다.


    자신이 속한 종교에 애정을 가진 만큼 누가 잘못되었다 욕하면 당연히 화가 나죠. 아직도 내 자신이 한없이 죽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으로, 종교가 내 소유물인 양 그렇게 욕심을 내는 죄를 범하고들 있는데요.


    그러나

    정말 좀 융통성 있게,

    무조건 나는 이 종교만 평생 믿기로 작정했다, 이런 고집보다도

    세상에 완벽은 없으니

    우리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니,

    완벽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우선으로 중심으로 두고 옳은 길을 찾았으면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면 천주교가 옳다고 하시면 천주교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아니라고 하십니다. 개신교가 바르게 가고 있는 거라고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고

    그래서

    착하신 천주교 신자분들도 많이 계신데,

    천주교 윗 세력들이 프리메이슨이고 일부 정말 아무것도모르고 믿는 여럿 신부들이나 작은 교황들이 탄압받으며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는 등 여러 어지러운 사건들 때문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믿는 신자들 모두 정신 차리고 정말 자존심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개신교로 피신했으면 합니다. 천주교 시스템 절대 주님과 무관한 것이니까요.


    우리나라가 일제시대 이후로 개신교의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요.

    그러나 우리나라 역시 프리메이슨이 정치계에 잠입하면서

    개신교 쪽에도 잠입을 했네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대형교회의 내로라하는 목사들 다 프리메이슨으로서 기독교 욕먹일 짓들만 일으켜왔습니다.

    태어나자마자 그런 목사님들이 퍼뜨린 세상에서 살면서

    썩은 설교, 썩은 교회운영, 썩은 믿음, 썩은 악행 등등을 저지르고 부추키면서

    기독교 붕괴를 목적으로 한 짓들로 인해

    많은 신자들이 잘못된 신앙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나 역시 그러했구요. 그러나 영적 깨달음과 분별력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요즘도 엄청난 죄들을 짓지만 가까스로 정신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보다 바른 신앙의 길을 가려고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 처럼

    나 역시 새로 거듭나려 합니다.

    모두가 정신 차리고

    마귀에 미혹당하지 말고 속지 말고 헷갈리지 말며

    승리의 천국의 길로 갔으면 합니다.


    참고로

    하느님인데 왜 하나님이냐고들 하십니다.


    하느님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위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한분이시라는 하나님의 특징, 그분이 어떤 분이냐를 말해주죠.

    국문법에 어긋난다고 하지만,

    그깟 국문법.. 하나님께서 없앨라면 없애버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도 계십니다. 고로 하느님은 맞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남의 종교 존중할 줄 몰라서 불교 등등을 수용안하는게 아니라는 것을요..

    하나님은 그분 이외에 다른 신은 절대로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의 종교 옳다고 외치는 종교를 왜 만들고 왜 섬기는지요? 그런 종교라면

    진정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종교는 아니라고 봅니다.


    개신교는 오직 성경, 을 외치지는 않습니다. 그건 잘못된 전파죠.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지만,

    우리는 성경을 믿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고로

    성경으로 배우고, 생활하면서도

    현실에서 실천하고

    하나님의 중심 아래에서

    우리 모두가 모여

    서로 영적 교제를 하고

    여기저기 배우고 깨우치고 깨달음을 얻어가며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하는 거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하는데 그동안 잘못된 기독교 사회가 잘못 가르쳐왔던거죠.

    정말 그 핵심들을 봤으면 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블로그 쥔장님은 개신교인지 천주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의견 드려봤습니다.


    참고로,

    평화방송 주일미사프로그램 끝나면

    일루미나 스테인드 글라스협찬이라고 나옵니다.


    난 그 일루미나라는 이름이 참으로 요상스럽습니다...하고 많은 이름 중에

    일루미나 라니...

  6. 전 별로 음모론자들과는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LG가 뭐라구요? 'Lucifer is god, 또는 goat'이라구요? 지나가던 개가 듣고 웃겠습니다. Lucky Goldstar의 약자인데 해외진출할 때 이게 촌스러워서 Life is good의 약자로 한 걸로 아는데 이런게 다 위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생각하는 것이야 자유니까
    참 LG에서 안만드는 것도 없고 안 파는 것도 없는데 집 안에 LG 딱지 붙은 것들 빨리 내다 버리세요 그러다가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겠습니다 ㅋㅋㅋㅋ
    참 GS도 원래 LG와 같은 계열있던 거 아시죠? 아이고 GOAT is Stan이네 GS에서 기름 넣으면 지옥가겠네요? LG폰가지고 LG 유플러스 인터넷으로 인터넷 하지 마세요 그러다 벌 받아요

    그리고 평화방송 튼다고 사고난다는 이야기는... 참 무속신앙인들 다운 발상을 하시네요. '신 내림 받기 싫어서 피하니까 아프고 사고나고' 이거나 '개신교 라디오 방송 안 듣고 평화방송 듣다가 사고난다'나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교황의 행보에 관해서 참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은데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람들을 만나고 위로해 주면서 화려한 옷을 입고 다는 것을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럼 몇몇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박사학위 가운 입고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것은 잘하는 행동인가요? 칼빈이 검은 가운을 입고 설교한 것은 세상의 헛된 것을 검은 가운 안에 다 숨겨야 한다고 했는데 어째 장로교 목사님들은 박사학위 자랑을 설교시간에 하는 것인지 참 한심합니다.

    성경이 66권 떡재본으로 하늘에서 떨어진거라 믿는건 아니시죠? 원본은 있나요? 원어에서 한글로 하나의 오류도 없이 번역 된 것은 확신한가요? 완벽하고 오류가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성경책 마태복음 17장 21절, 18장 11절을 한번 확인하고 와서 성경이 66권이 어쩌고 저쩌고를 한번 다시 말해주세요.

    그리고 마리아가 결혼하여 예수님 외에 다른 자녀를 둔 것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의 어머니 부터 부정하다고 말하세요.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그 이유 하나로도 충분히 존경 받을 만한 분입니다. 데오도코스라는 개념은 아시죠? 다른 종파의 신학적 주장은 신학적 논쟁으로 답해야지 감정으로 답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개성개성 계속 말씀하시는데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개성은 개성이라 적어놓고 꼴통, 또는 꼰대라고 읽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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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룩을조심하라

    하나님께서는 행한대로 갚아주신다 하셨습니다. 악한자는 그대로 악하고 선한자는 그대로 선하라 하십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그냥 그대로 두라 하십니다. 추수때가 가까움이니..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모두가 구덩이에 빠지리라.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거룩한 곳에 서있는 말세지말입니다. 논쟁하지마세요 진리는 논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자기의지로 믿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의로 구원받는 것은 더욱 아니구요. 그냥 은혜만 구하십시요. 두드리면 열릴것이라. 깨어 기도하게 하옵시며 환난을 감하여주옵소서..

  8.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건지요?
    누룩이 세상을 바꾸기도 합니다. 마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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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전도사

    ㅋㅋㅋㅋ어쩌다.. 흘러흘러 글들을 많이 보게되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신학(M.div) 과정중 입니다) 여러 글들과 댓글을 살펴보니 주인장분께서도 자신의 논리와 변증이 있으시고, 반대하시는 분들도 잘 정리해서 말씀해주셨네요.
    서로 이만큼 대화가 오고갔는데 마음의 미동이 없다면, 서로 여기서 그쳐야겠지요.
    그래서 저도 그냥 나가려다가, 바로 위에 '누룩을 조심하라' 분 댓글을 보고 빵 터져서 한 자 적고 갑니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되는 것은 바로 구원관이죠. 지극히 당연하게도 주변의 여러 종교들만 보아도 그 구원관은 같지 않습니다.
    만약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구원"에 초점을 두지 않고 다른 "주변요소"들을 지적하며 서로 맞녜, 아니녜, 어긋나녜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너무 과한 배려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구원관에 집중하십시요.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시는 구원관을 선택하세요. 그리고 선택하신 종교의 신자가 되십시요. (주변만 맴돌지 마시고)
    혹여 그 수많은 구원관들이 합해질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만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부디 성령님께서 주인장분의 마음에 진리를 비춰주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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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율이 아빠

    저는 다른 종교의 구원관을 옹호한적이 없는데요
    물론 많은 댓글 중 그런 비슷한 뉘앙스의 글은 있을 수는 있겠죠.

    설마 가톨릭을 타종교로 생각하는건 아니시죠? 기독교는 가톨릭/오순절/개신교/정교회 이렇게 크게 4종파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영역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에 부족한 인간으로써 과연 누군가의 영혼이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를 정확히 판단할 수있을지 궁금합니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까요.
    종교가 죽어서 가는 천국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그것만이 최종목표이면 뭐하러 힘들게 이 땅에서 살아가죠? 힘든 세상 빨리 끝내고 천국가면 그만일 것 같은데 말이죠.

    이렇게 하다보면 결국 사람들이 구원론 만들고 거기에 맞는 교회론 만들고 교회론 나오니까 기독론이 나오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기독론, 교회론, 그 다음 구원론이 나와야 순서 맞다고 생각하는데 교회론이나 구원론이 기독론보다 먼저 나오면 예수의 모습은 반드시 왜곡됩니다.

    제가 왜 믿음과 더불어 행위가 중요하다고 하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제가 행위에 대해서 강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미이 임하였지만, 아직 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맞겠죠.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각자의 삶에서 인정하고 받아 드리는 것이 되고 그게 누룩의 삶이 아닌가요?

    마태복음 13장은 천국비유 장이니까 잘 살펴 보세요. 특히 겨자씨와 누룩 비유는 작은 자, 보잘 것 없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말하고 있잖아요.

    신학을 공부하신다고 하셨으니까 제 댓글의 누룩 보고 빵 터졌다 하지 말고 성서학을 조금 더 열심히 하시고 특히 예수님의 비유를 시대적 상황과 잘 맞춰서 연구도 해보시고 아는게 많다고 목회 잘하지는 않습니다. 삶에 실천이 없으면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교회랑 신학교 안에 있다고 예수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생가도 버리시구요.

    저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잘 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전도사님께 진리를 비춰주시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전문

2014.08.16 09:00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온 교회와 일치하여, 우리는 성모님께서 육신과 영혼을 지니신 채 천국의 영광 안으로 올라가신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들의 숙명을 보여 줍니다.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처럼, 우리도 또한 죄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승리에 온전히 동참하도록, 그리고 주님의 영원한 나라를 주님과 함께 다스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1독서에서 선포된, “태양을 입고 ……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묵시 12,1)이라는 “큰 표징”은 하느님이신 아드님 곁에 영광스럽게 앉으신 마리아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앞에 열어 놓으시는 미래를 알아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한국인들은 그 역사적인 경험에 비추어 이 국가의 역사와 민족의 삶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모님의 사랑과 전구를 인식하면서, 전통적으로 이 대축일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는, 새로운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어 죄와 종살이의 왕국을 무너뜨리시고, 자유와 생명의 나라를 여셨다는 성 바오로 사도의 말씀(1코린 15,24-25 참조)을 들었습니다. 참된 자유는 아버지의 뜻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단순히 죄에서 벗어나는 일보다 더 크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자유입니다.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을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유이며, 그리스도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는 기쁨이 가득한 희망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입니다.


오늘 하늘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면서, 우리는 또한 한국 교회의 어머니이신 그분께 간청합니다. 세례 때에 우리가 받은 존엄한 자유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이끌어 주시도록 간청합니다. 또한 이 나라의 교회가 한국 사회의 한가운데 에서 하느님 나라의 누룩으로 더욱 충만히 부풀어 오르게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기를 빕니다. 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


고귀한 전통을 물려받은 한국 천주교인으로서 여러분은 그 유산의 가치를 드높이고, 이를 미래 세대에 물려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새롭게 회개하여야 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대축일을 거행하면서, 우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와 일치하여 우리 희망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성모의 노래’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운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루카 1,54-55 참고). 성모 마리아께서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기에 복되십니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모든 약속은 진실하게 드러났습니다. 영광 속에 앉으신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의 희망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희망은 “우리 생명을 위한 안전하고 견고한 닻과 같아”(히브 6,19 참조) 그리스도께서 영광 속에 앉으신 곳에 닿게 합니다.


이 희망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이 제시하는 이 희망은, 외적으로는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그런 사회 속에서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입니다. 이러한 절망이 얼마나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이런 젊은이들이 기쁨과 확신을 찾고, 결코 희망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가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를 누리며 기뻐할 수 있도록, 그 자유를 지혜롭게 사용하여 형제자매를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다스림이 곧 섬김인 영원한 나라에서 완성될 바로 그 희망의 표징으로서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모님의 은총을 간청합시다. 

아멘.


주교회의 사무처 번역 /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노컷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오전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하율이 아빠 신학함

핵 없는 세상을 향한 WCC 선언문

2014.08.05 11:45
전 세계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원자력발전의 안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이미 독일은 2022년까지 독일 내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원전 폐쇄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설계 된지 42년이 넘은 고리원전 1호기를 지금도 가동 중이며 계속해서 수명 연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리원전 1호기의 문제성과 그 위험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환경단체들과 지식인들이 지적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WCC 10차 총회는 고리원전과 20㎞정도 떨어진 곳에 열렸으며 이 원전의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2일부터 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었던 WCC 중앙위원회에서 ‘핵 없는 세상을 향한 WCC 선언문’을 채택했습니다. 원래는 작년 총회 기간 중에 채택 될 수 있었지만 마지막에 영국교회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번 중앙위원회에서 선언문이라도(이게 WCC의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문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부분은 확인 후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채택이 되었기 다행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아래 선언문은 WCC 홈페이지에 가져온 것이며 번연은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에서 해주셨습니다. 핵에 관련된 자료는 각각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핵 없는 세상을 향한 WCC 선언문 (전문)


© WCC/Peter Williams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는 핵 폭발 사고 및 위협으로 큰 희생을 치른 지역에서 열렸다. 동북아시아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전쟁 중에 핵무기가 사용된 곳이다. 냉전 기간 동안에는 태평양과 아시아 지역에서 1천 번 이상의 핵 실험이 실시되었다. 오늘날 이 지역의 국가들은 핵무기를 직접 보유하고 있거나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동아시아에 이미 건설되어 있는 1백 개 이상의 핵발전소와 앞으로 건설 예정인 많은 핵 발전소는 이 지역 경제의 용기의 징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후쿠시마 비극의 징후이기도 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핵발전소 밀집도가 높은 나라이다.


동북아시아에 사는 양심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핵발전소 근처에 그리고 적대국 핵무력의 표적지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회가 군사적, 경제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WCC 부산총회 이전과 이후에 일본, 한국,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 개최된 여러 에큐메니컬 회의와 종교간 협의회들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한 발걸음으로서 핵에너지를 대체할 것과 또한 이 지역에서 평화를 향한 발걸음으로서 핵무기를 제거할 것을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촉구해왔다.


핵무기는 결코 참된 평화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핵무기는 폭발로 인한 열과 방사선으로 인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 핵무기는 공간과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파괴시킨다. 그 위력은 무차별적이며 그 결과는 다른 어떤 무기와 필적할 수 없다. 핵무기는 그것이 존재하는 한 인류에 위협이 된다.

각 도시들은 핵무기의 주요 목표물이다. 히로시마에 떨어뜨렸던 크기의 소형 핵폭탄 1백 개를 터뜨린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약 2천만 명을 살상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2배 혹은 3배의 사상자를 낳을 것이다. 불 타버린 도시에서 발생하는 검은 먼지는 대기권 상층부로 떠오르며 세계의 기후를 교란시킬 것이다. 이후 10년 동안 차가워진 기온과 짧아진 곡물 성장주기로 20억 명의 사람들이 기아의 위험에 빠질 것이다.


이러한 데이터 앞에서 지난 2013년에 전 세계 124개국 정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핵무기를 다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곧 인류의 생존을 위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핵을 보유한 국가들의 핵전략은 핵무기의 분명한 사용을 요구하고 있으며 핵의 역사는 사고와 계산 착오 및 큰 재앙이 될 뻔한 사건들로 가득 차있다. 게다가 단 한 번의 핵 폭발만으로도 그 나라의 긴급구호 체계는 궤멸될 것이다. 핵무기가 결코 사용되지 않는 것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핵 무기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핵에너지 관련기술은 특히나 위험한 형태의 개발방식이다. 2011년의 후쿠시마 재앙은 다시 한번 핵 위협이 가해지는 대상은 주민과 지역공동체 그리고 자연 생태계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재앙으로 인해 자기 땅에서 추방된 수만의 사람들은 다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농장과 마을과 도시는 오염된 채 텅 비어있다. 대중의 건강과 환경에 끼친 재앙의 전체적 영향은 결코 다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완벽한 정화는 불가능하다.


후쿠시마 피해자들은 지금 ‘히바쿠샤’라 불리는데 이 말 안에는 고통, 사회적 낙인, 그리고 잔혹한 운명이 들어 있다. 이 용어는 원래 일본에서 핵폭탄을 맞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내년 2015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5년의 히바쿠샤는 여전히 다른 누군가가 그들과 같은 운명으로 고통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 아픔을 증언하고 있다. 이 1945년의 핵무기 피해자들이 지금 핵에너지를 비판하는 2011년의 히바쿠샤와 연결되었다.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증언을 우리의 증언으로 만들어야 한다.


건강, 인도주의적이고 환경적인 관심사들

핵기술의 군사적, 민간적 사용은 둘 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다량의 유독물질을 발생시키는데 이는 최악의 형태의 환경오염의 하나다. 어떤 부산물들은 수백만 년 동안 생명체에 위협이 된다. 우리에게 알려진 어떤 장기 간 저장이나 처리방식도 핵이 본래 가지고 있는 위험이 다 없어지기 전까지는 핵폐기물을 환경으로부터 격리시킬 수 없다.


우리는 핵에너지로 경제를 가동하고 핵무기로 자신을 보호함으로써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으며 우리 자신과 후손들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에게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핵 방사능은 보거나 냄새 맡거나 맛볼 수 없는 독이다. 핵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며 그 영향은 여러 세대에 걸친다. 핵발전소에서 방출된 동위원소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마시는 물 그리고 먹는 음식을 오염시킬 수 있다. 그 동위원소는 인간의 몸에 방사능으로, 화학적으로 유독하다.


이온화된 방사선이 끼치는 영향은 핵 재앙을 당한 초기에 그것이 어떻게 가족과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트라우마로 이어지는지 관찰하면 알 수 있다. 핵 재앙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종류의 암 발생 위험이 점차 증가하고 유전자의 영구적 손상은 분명해진다.


핵 산업에서 ‘안전’이라는 용어는 지지 받을 수 없는 개념임이 증명되었다. 잘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심각한 사고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정부와 관련 기업들은 그러한 사고들의 심각한 결과를 일상적으로 무시하거나 일축해왔다.


핵 사고와 핵 실험 동안 방출된 이온화된 방사선과 화학적 독극물에 허용수치를 정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것이라고까지 판명되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그리고 다른 사고들이 일어나자 핵 사고의 심각성을 최소화하고 대중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단지 오염 ‘허용’수치가 올려졌을 뿐이다.


핵 실험장소 주변에서 비슷한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은 그들의 땅을 핵 실험장소로 사용하는 외래인들로부터 상투적으로 방사능 낙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종종 그들은 고위험 지역을 떠나라는 말도 듣지 못한다. 방사선의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군의관들은 피해자를 검진하긴 하지만 의료적 치료를 하도록 위임 받지는 못했음을 우리는 많은 보고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핵실험 인근 지역에 미치는 핵 물질의 부정적인 영향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몇 십 년간, 화학 및 생물학 대량살상무기, 레이저 무기, 지뢰, 집속탄에 반대하는 새로운 인도주의적 기준이 만들어졌다. 시리아의 화학무기 제거를 위한 주요 핵 국가들의 결의는 이의 적절한 예이며 앞으로의 행동을 위한 선례이다.


핵무기라고 하는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에 대하여 이와 비슷한 인도주의적 금지조치를 취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핵무장국가들은 계속해서 핵무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지속적인 사용을 위해 핵병기들을 현대화하고 있고, 효과적 핵군축 협상을 위한 핵확산금지조약 의무를 최소화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염려를 비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일어나면서 핵에 대한 논쟁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각 나라의 정부들과 국제단체들과 시민사회와 종교 조직들이 건강 및 인도주의적이고 환경적인 결과를 토대로 핵무기를 비합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핵무기의 특성으로 여겨지던 적법성과 위신이 부정되고 있다.


핵에 대한 에큐메니컬 인식

세계교회협의회는 정의, 참여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핵무기와 핵 에너지에 대한 윤리적 성찰과 입장표명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1948년의 제1차 WCC 총회는 핵과 그 외 현대적 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을 “하나님에 대한 죄이자 인간의 품위를 격하시키는 일”이라 선언했다. 이후 교회는 핵 위험에 대한 대응을 모색해왔다. 1975년의 제5차 총회는 핵 발전과 핵무기, 그리고 핵폐기물 저장의 위험성과 핵 기술의 확산에 의해 제기된 ‘윤리적 딜레마’를 경고하였다. 1979년에 열린 <신앙, 과학 그리고 미래에 관한 세계회의> 또한 핵 발전이 CO2 배출을 감소시키는 데 있어서 아무 중요하고도 장기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경고했으며, 핵발전소 건설의 일시 정지를 요청하고 재생 에너지로의 중대한 전환을 촉구하였다.


1983년에 열린 제6차 총회는 “핵무기의 보유와 사용을 인류에 대한 범죄로 금지하는 국제적 사법 기구의 설치”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3년 후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 중에 에큐메니컬 운동은 오늘의 후쿠시마 위기를 미리 내다보는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때 핵 발전소 근무자들의 안전, 위험의 근거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정부의 경향성, 그리고 각 개인들이 당하는 피해를 알고자 하는 시민적 권리에 대한 부인 등의 문제를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1989년에 열린 <핵 에너지에 대한 WCC 협의회>는 “인간의 행동이 종종 창조세계의 본래의 모습을 어지럽히며 오늘날에는 그 생존마저 위태롭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오늘날 핵 에너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유효한, 에너지 기술의 세 가지 윤리적 원칙을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1) ‘창조세계의 지속가능성’을 촉진하기 위해서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 원칙, (2)인간의 생존과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정의의 원칙, (3)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선택에 사람들이 참여하게 하는 원칙.


2009년에 채택된 “생태정의와 생태부채에 대한 WCC 성명서”는 핵에너지의 군사적, 민간적 사용과 관련된 몇 가지 관심 사안에 대해 언급하였다. 거기에는 핵무기의 생산, 실험, 배치 및 핵 충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핵 겨울’과 식량부족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생태부채’라는 개념, 핵에너지에 의해 얼마간 부추겨진 ‘무제한의 소비 시대’, 그리고 핵 에너지는 안전하고 싸고 믿을 만 하다는 주장을 부인하는 경제적이고 생태적 연구결과 등이 포함된다.


2011년에 자메이카에서 열린 <세계 에큐메니컬 평화대회>는 ‘전면적 핵 군축’이라는 WCC의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이 대회는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재앙이 “우리가 더 이상 에너지원으로 핵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었다”고 선언하였다.


2013년에 한국에서 열린 WCC 총회는 “한반도에서는 인간안보가 분열적이고 경쟁적이며 군사적인 안보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동북아시아에서 핵 발전 과 핵무기의 제거를 요청하였다.


핵 위험에 대응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WCC 회원교회들의 전 세계적인 참여에 의해 만들어졌다. 캐나다에서 인도까지, 일본에서 호주까지, 그리고 독일에서 마샬 제도까지 교회는 핵 발전소의 건설에 저항하고 핵 무기의 배치에 항거하며 우라늄 광산, 핵 실험 그리고 핵 재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지역공동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 안에서 우리는 종종 다른 종교인들과 협력하고 있다.

WCC 중앙위원회는 핵 에너지라는 어려운 주제에 아직도 정리된 입장을 가지지 못한 교회들이 있음을 인지하며, 핵 에너지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상황에 따라 다른 방법을 채택할 교회들도 있음을 인정한다.


아프리카 3개국의 교회지도자들은 2009년에 발효된 <아프리카 비핵지대> 실현의 촉매자가 됨으로써 2006년 WCC총회가 권고한 사항을 실제로 이행하였다. WCC가 소집한 에큐메니컬 네트워크는 2011년 WCC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준하여 2013 체결된 무기거래조약(Arms Trade Treaty) 안에 인도주의적 범주와 인권의 범주가 확실히 포함되게 하는데 기여했다. 부산총회의 권고에 따라 6개 대륙에 있는 교회들은 핵무기에 대한 인도주의적 금지를 목표로 공동의 에큐메니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창조세계의 청지기 직과 위험의 관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키고 생명의 신성함을 보호하는 책임을 나누도록 부르심 받았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책임 있고 포용적인 에너지 청지기가 되려면 공공선, 창조세계의 보전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더 큰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에너지 자원은 안전하고 능률적이며 재생 가능해야 한다. 에너지 보존은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에너지 사용이 미래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 오늘의 에너지는 요컨대, 내일의 에너지로도 사용될 수 있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수 십 년에 걸친 면밀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핵 에너지는 이러한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다. 핵 에너지는 재생가능 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자원에 토대를 두고 있지도 않다. 탄소는 핵연료사슬 전체를 통해 방출된다. 채굴, 가공, 이송, 건설, 그리고 가동에서부터 원자로의 폐로와 유독 핵 폐기물의 영구적 관리에 이르기까지 탄소가 방출된다.


또한 핵에너지는 특히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시민에게로 부채가 이전될 때 저렴하지 않은 것임이 판명되었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지불되어야 할 핵 폐기물의 관리비용은 어림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것임이 인정되었다. 만약 모든 비용을 낱낱이 합산해야 한다면 거기에는 정부의 직간접적 보조금, 재난 시의 책임부담금, 그리고 안전한 폐로 비용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 비용 중 어떤 것들은 숨겨져 있으며 또 어떤 것들은 언제까지도 계속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다른 에너지원과 비교해 볼 때 핵 발전은 막대한 자본투자도 요구한다. 핵 발전소를 위한 막대한 정부 보조금은 전형적으로 재생 에너지기술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훨씬 능가한다.


막대한 공금 지출 역시 핵무기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특징이다. 핵무장 국가들은 매년 핵전력에 약 1천 억 달러를 쓴다. 현재 유럽-대서양 지역에서만 핵 무기의 개량, 개조, 증설에 총 5천 억 달러 혹은 그 이상의 지출이 예정되어 있다. 이 막대한 액수의 공금은 핵 에너지 관련 기업들을 포함한 사기업들에게 막대한 수입원이 되어주고 있다. 전 세계 30개국에 걸쳐있는 약 300개의 은행, 금융기관 및 연금기금이 27개의 기업에 핵 무기와 관련해 투자하고 있다. 2013년에 그 기업들이 소유한 재산은 3천 140억 달러에 달한다.


핵 에너지 사용은 관리하기 힘든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핵 재앙의 가능성이 비교적 낮을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는 막대하거나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위험은 그런 까닭에 높다.


많은 정부들이 그러한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하여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 왔다. 후쿠시마 재앙 이후 일본, 독일, 스위스, 스페인, 멕시코 그리고 대만이 핵 발전소를 폐쇄했거나 건설을 중지했으며 혹은 궁극적으로 핵 발전소를 제거하겠다고 서약했다. 다른 국가들은 비핵 에너지원에 의존할 것과 핵무장을 거부할 것을 재천명하였다.


핵 발전소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부들은 위험을 떠안으면서 동시에 자기 국민을 그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민간자본은 핵 발전소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위험 때문에 이를 기피하고 정부는 거기에 공적인 돈을 보조금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수 십억 달러의 보조금 이외에도 정부들은 핵 사고나 재앙이 발생할 경우 업계의 책임을 면제해 주고 있다. 후쿠시마 재앙의 경제적 총 손실을 예로 든다면 2천 5백억 달러에서 5천 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큰 위험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일부러 껴안는 행위다. 첫째로, 여기에 연루된 정부는 자신의 핵무기를 사용하기 위하여 확실한 위협이 존재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둘째로, 공격을 당하지 않으려면 적국의 위험관리에 의존해야만 한다. 셋째로, 하지만 만약 공격을 받는다면 자신의 위험관리 정책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어야만 한다. 적국도 이와 똑같은 모순을 안고 있다. 지구의 운명은 평생 이러한 기괴한 도박으로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박을 지속하는 것은 분명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모멸이다.


핵과 관련된 조약과 협정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확산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냉전이 끝난 후 핵탄두의 수는 감소했으나 핵무장 국가들은 핵 병기를 제거하기 보다 현대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게다가 핵무기 제조 가능 국가의 수가 증가하였다. 사실 단순히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심지어 작은 국가조차 국제정세에서 강력한 도구를 가지게 되는 것임이 입증되었다.


안전, 그리고 핵 발전과 핵무기 사이의 연결고리

핵 발전은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물질과 기술을 획득하는 통로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것이라며 설립된 핵 발전은 점차 확장되면서 핵무기의 확산을 조장하였다. 민간의 핵 발전은 군사적 목적을 감출 수 있으며, 거기서 발생한 핵폐기물을 재처리하면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핵무기를 만드는 유혹에 빠지게 하였다. 기술적 정교성 수준이 다른 국가들은 원자로급 플루토늄을 사용해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민간의 그리고 군사적 핵시설은 테러나 전쟁의 잠재적 목표물이다. 방사능 물질은 도난 당하거나 거래될 수 있으며 재래식 폭탄과 함께 ‘더러운’ 폭탄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4백 개 이상의 핵 발전소가 현재 가동 중이며 15개 국가가 자국 전기수요의 25% 혹은 그 이상을 핵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그것을 대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핵 발전보다 더 싸고, 더 안전하고, 더 지속 가능한 대안이 있다. 첫째는 보존이다. 현재 생산되는 모든 에너지의 1/4은 보존 조치를 통해 절약될 수 있다고 추정되는데 이는 현재 핵 발전소에 의해 생산되는 모든 전기의 양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에너지 절약은 가장 실천하기 쉽고 가장 저렴하며 가장 안전한 대안이다.


원자로의 단계적 폐지와 핵무기의 제거는 재생에너지의 확대, 핵 관련 일자리를 잃은 지역공동체에 대한 지원,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새로운 사업의 촉진, 위험한 핵 물체 생산의 중지,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핵 위협의 제거와 같은 기회들 역시 제공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기후위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21세기에 좋은 거버넌스가 이루어지고 인류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일관성 있게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기회도 될 것이다.


정의와 평화의 순례로서의 핵 출애굽

하나님은 관대한 창조주이시며, 원자와 분자로부터 생명을 존재로 불러내시고 창조세계에 풍성한 생명을 부여하셨다. 이러한 원자를 치명적이고 부자연한 요소로 쪼개는 것은 이미 심각한 윤리적, 신학적 반성을 불러일으킨다. 원자 에너지를 사용하여 생명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죄 많은 오용이다.


우리는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며 살도록 부르심 받았다. 핵무기로 보호받으며 공포 속에 살거나, 핵 에너지에 의존하며 낭비 속에 살도록 부르심 받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양한 선물과 생명의 약속 그리고 조화로운 공동체와 경제를 만들도록 초대받았다.


1990년대에 캐나다 북부 사투-덴 지역 사람들은 자신의 땅에서 나온 우라늄이 1945년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한 폭탄에 사용된 것을 알고 일본에 원로 대표단을 보내 사과하였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일들을 목격하고 있다. 핵이 사람들과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군비와 에너지 사용을 비판할 때, 물질적 안락과 편리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소비하는 에너지 자원과 그 양에 대한 관심을 외면했음을 고백할 때, 그리고 핵무기의 존속에 대한 모든 지지를 철회하고 다른 사람들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때,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남을 목격하는 것이다.


히바쿠샤, 혹은 한국인 핵폭탄 희생자를 가리키는 피폭자, 그리고 핵실험의 피해자들이 지금 핵시대로부터의 출애굽을 외치고 있다. 우리는 핵으로 인해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 기울어야 한다. 유전자의 변이로 기형이 된 사람들, 핵 실험으로 인해 오염된 땅과 바다에 사는 사람들, 핵 사고로 인해 오염된 농장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광산과 발전소에서 일하다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귀 기울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핵이라는 악을 포함하여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내신다. 창조세계의 파괴가능성에 직면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여 언약을 맺으셨다 (창세기 9장). 하나님의 영은 모든 피조물을 양육하신다 (시편 104편). 사람에 대한 착취와 피조물에 대한 파괴는 함께 이루어진다 (이사야 23장).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창조세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현존과 목적으로 인도하시고, 창조세계의 선함에 해를 끼치지 말라고 경고하시며, 모든 창조세계는 감탄과 축하와 찬양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상기시키신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놓으셨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살려면 “이제 생명을 택하라” 고 말씀하신다 (신명기 30장). 부산총회에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이제”가 임박했으며, 이 시간은 회개와 은총이 가득한 시간, 곧 종말론적 시간임을 기억하였다. 우리는 교회로서 눈을 멀게 하는 핵무기의 섬광과 원자로의 치명적인 불빛으로부터 태양과 바람과 물과 지열에너지와 같이 우리가 사는 자연세계 안에 있는 건강한 에너지원으로 전환을 이루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것은 핵과 그 외 다른 위험으로부터의 출애굽의 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핵 에너지를 통해 에너지를 맘껏 사용하는 호사를 누렸다. 이제 우리는 원자로를 폐쇄하고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쓴 맛을 배워야 한다”라고 부산총회 앞서 발표된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선언>은 밝힌다. “우리는 핵무장 국가의 기존질서의 안보가 아니라 모든 인류와 창조세계의 생명안전을 긴급하게 선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길을 준비하셨고, 우리가 자기파멸과 폭력 및 전쟁으로부터 우리의 발길을 돌리도록 하셨다. 바로 이 정신에서 WCC 제10차 총회는 세계 모든 곳에 있는 교회들을 불러 <정의와 평화의 에큐메니컬 순례>를 함께 떠나자고 초청한 것이다.


그러므로 2014년 7월 2-8일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는 회원교회와 관련기관 및 네트워크에게 다음과 같이 할 것을 요청한다.

1. 핵 에너지의 민간적, 군사적 사용에 관한 윤리적, 신학적 토론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심화한다. 이 토론에는 핵 에너지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지, 실제로 어떤 비용을 치르고 있는지,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어떤 권리를 침해하는지, 건강과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핵 발전 전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를 통한 보호를 수락해야 하는 증거가 있는지를 포함한다.


2. 각 개인과 공동체의 생활방식을 변혁하기 위하여 생태적으로 민감한 영성을 개발하고 실천한다. 에너지 소비와 효율성, 보존과 재생 가능한 자원 에너지 사용 안에서 적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아울러 WCC안에서 환경적으로 의식이 있는 교회의 경험을 토대로 일을 추진한다.


3. 핵무기와 핵 발전 및 이와 관련된 수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고 이 실천을 장려한다. 그리고 핵무기와 핵 발전소에 대한 정부의 지출을 재생가능 에너지의 개발과 핵 산업이 폐쇄된 지역사회의 재개발 비용으로 돌리도록 요구한다.


4. 일본 후쿠시마 재앙의 생존자와 태평양 핵실험 피해자 등 핵 사고와 핵실험 피해자들이 입은 손실을 복구하고, 목회적으로 돌보며, 법률적 조치를 취하고, 배상하는 일을 지원한다. 마찬가지로 마샬 제도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핵무장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지원한다.


5. 자기 나라의 정부가 국제인도주의법에 따라 또한 기존의 국제의무조항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핵무기의 생산, 배치, 이전, 그리고 사용을 금지하는 정부 간 행동에 참여하게 하고 이를 위한 시민 사회의 노력을 지지하게 한다.


6. <핵무기 폐기 국제 캠페인>(ICAN)처럼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연대조직에 안에 있는 다양한 시민 사회, 교회, 그리고 다른 종교의 조직들과 협력하는 에큐메니칼 네트워크에 참여한다.


7. 군사훈련의 일시적 중지, 핵 억제 정책을 대체하는 집단적 지역안보조약의 협상 등,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장기적인 에큐메니컬 목표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지지한다.


8. 아시아 안에서 혹은 아시아를 목표로 세워진 군사기지, 핵전력 그리고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확장을 반대한다. 그리고 한국 제주도의 강정마을에 건설되는 새로운 해군기지 등과 같은 군사적 확장에 반대하는 대중의 인식을 높인다.


WCC중앙위원회는 회원 교회, 관련 조직, 그리고 네트워크가 WCC와 함께 다음과 같은 국가적, 국제적인 통합적 활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9. 핵 군축을 요구하면서도 미국의 핵전력에 의존하고 있는 31개의 핵무기 없는 국가들이 국제인도주의법에 따라 핵무기의 제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그들의 영토로부터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며, 집단적 비핵 안보조약의 협상에 임하도록 촉구한다.


10. 특히 동북아시아와 중동에서 새로운 비핵지대의 창설을 추진하며, 어떤 핵무기의 존재나 위협이든 그에 대항하여 동남아시아, 태평양,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는 기존의 비핵지대를 강화하는 조처를 장려한다.


11. 각 나라의 정부들이 핵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에너지 효율 및 보존에 기여하도록 에너지 사용을 전반적으로 개혁하며, 탄소와 유독폐기물의 방출을 감소시키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도록 촉구한다.


12. 이상과 같은 권고사항들에 부합하는 일관되고 또한 다른 분야와 제휴하는 행동들을 조직하여 WCC가 부산총회에서 선포한 <에큐메니컬 정의 평화 순례>에 기여하게 한다.


2014년 7월 2일부터 8일까지 개최되었던 WCC 중앙위원회에서 승인된 문서

(번역 :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관련자료



하율이 아빠 신학함

  1. Blog Icon

    비밀댓글입니다

  2. 맞습니다. 비핵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신앙삶

2014.07.29 16:32
본 글은 2012년 8월에 열린 오이코스 여름학교 워크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이번 오이코스 여름학교가 8월 20일(월)-23일(목)가지 전남 장성 한마음공동체에서 "생명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우리를 악에서 이끄소서"란 제목을 가지고 문이 열린다. 오이코스 여름학교란 세계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에큐메니칼신학을 함께 연구하기도 하며 예배, 성서묵상, 특강, 생명밥상, 세계신학자들과 신학 talk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신학캠프이다. 여기에 국내 교수 20여명과 목사 10여명 그리고 세계신학자 7명이 1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신학을 예배로, 성서연구로, 밥상으로, 춤으로 그리고 삶으로 나누어 가지는 재미있고도 유익한 여름학교가 될 것이다. 신학을 하는 대학생들과 대학원 학생들이 100여명 신청을 하였지만 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은 열어놓을 작정이다...

지난해 다룬 주제들인 성정의, 다문화, 동물권, 빈곤과 경제정의, 기후변화, 원자력발전(핵문제), 전쟁과 평화, 한반도 평화통일을 보다 더 심도있게 다루고자 8명의 교수들이 그 주제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신앙고백 등을 연구정리한 것을 5-6장정도로 요약하여 자료집에 싣기로 하였다,

그 중에서 본인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관한 주제가 맡겨졌기에 정리한 것을 여기에 실어본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신앙삶 - 정경호 교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유대 사람과 여러분 이방 사라들을 한 가족으로 만들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에베소서 2:14절, 현대인 성경)

I. 평화와 통일이 이야기

우리는 분단된 지 67년 동안 목청이 터져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찾는데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고 불렀다. 북은 북대로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는 하나의 조선, 백두산의 줄기가 내리어 이 땅은 하나의 강토. 통일이냐 분열이냐 엄숙한 이 시각에, 겨레여 나서라 투쟁의 한 길로 조선은 하나다.”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총칼을 겨눈 1950-53년의 한국전쟁은 너무 끔직해서 남한의 경우 24만 5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실종된 사람이 30만명, 부상당한 사람이 33만명이 훨씬 넘었다. 특히 학살당한 자의 수를 13만명으로 그리고 북한으로 납치당한 수를 8만 5천명으로 잡고 있으며 30만에 가까운 전쟁미망인, 10만명의 고아가 발생하였고 전쟁으로 흩어지고 헤어져서 생사를 알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수가 무려 1,000만명이 훨씬 넘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잠시 휴전을 한지 벌써 어언듯 60년이 가까웠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 미워하고 파멸되기를 바라는 상쟁의 마음으로 대치를 하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II. 본문이해 

오늘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신앙에 굳게 서서 함께 하나가 될 것을 당부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믿음의 같은 형제자매끼리 지난날의 어리석은 분열과 다툼과 상호불신의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유다사람이나 이방인이나 또는 어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 본문의 말씀이다. 나아가서 바울은 자신의 민족은 물론 모든 인류와 만물이 평화를 누리며 함께 하나 되는 통일을 꿈꾸고 있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생명․정의․평화는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면 실현될 수가 없다는 것이 그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7절로 12절까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죄사함을 받게 한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케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밝힌다. 특히 바울은 10절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구원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 곧 통일을 이룩해야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참된 평화와 통일로 인하여 거룩한 하나를 이룩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바울은 2장 14-15절에서 그리스도야말로 원수가 된 둘 중간에 막혀 있는 담을 허물어 버리시어 둘을 하나 되게 하시는 평화의 주(14절)이심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의 이야기 중에서 둘이 하나 된 참으로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는 창세기에 나타나는 쌍둥이 형제, 원수가 된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의 만남이다. 창세기 27장에 의하면 동생 야곱은 늙은 아버지로부터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아버지를 교묘하게 속여 가로채고 만 것 때문에 그들 형제들은 원수가 되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형을 피하여 외삼촌이 거주하는 멀고도 먼 밧단아람이란 곳으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창세기 33장에 의하면 야곱은 그곳에서 14여년을 살면서 결혼하여 두 아내와 많은 자녀를 두고 살았으니 고향이 그리워 결국 생명을 건 귀향길에 들어선다. 그리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얍복강을 건너 형 에서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4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는 형을 보았다. 이러한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 야곱은 겁이 나고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라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바로 그때 형 에서가 달려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동생 야곱을 와락 끌어안았던 것이다. 두려움에 쌓여있던 야곱은 자신을 감싸준 에서를 향해 말하기를,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서로 화해하여 둘이 하나가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형 에서의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는 마음, 따듯하게 환대하는 마음, 넓디넓은 너그러운 마음을 본 동생 야곱은 형님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 같다고 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나눠진 모습과 함께 하나가 둘로 나뉜 에서와 야곱의 모습과 분단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대의 모습을 머리에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원수가 된) 우리 유대 사람과 여러분 이방 사람들을 한 가족으로 만들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엡 2:14, 현대어번역) 
그렇다. 바울에게 보인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가 된 둘 중간에 막혀 있는 분열과 분단의 담을 단번에 허물어 버리시고 나뉜 둘을 하나로 만들어 내신 평화의 주 곧 평화통일의 주이신 것이다. 바울은 한 지역이나 민족의 평화에만 머물지 않고 모든 인류와 세계 나아가서 온 우주의 생명공동체가 평화를 누리며 함께 하나 되는 평화통일의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생명․정의․평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해방의 해인 희년인 것이다. 즉 희년곧 정의를 수반하는 평화의 계약과 그것 위에 수립된 해방의 해는 하나님의 통치적 주권에 대항하는 제국들의 지배, 즉 이집트의 바로 제국, 바벨론 제국, 앗시리라 제국, 희랍제국 그리고 로마 제국과 그 주변 왕국들의 지배라는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의로 타의로 이런 제국들의 지배에 굴복하게 되면, 사회경제적 안전이 파괴되고 평화가 깨어져서 희년의 법의 실현이 강력하게 요청된 것이다. 희년이라고 하는 평화의 계약은 제국들의 억압 속에서 신음하는 뭇 민족들에 대한 약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20세기 중반 초강대국들의 이념과 그들의 이익에 의해 둘로 나누어진 우리 민족을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III. 평화통일을 향한 신앙고백

1988년 한국기독교협의회인 ‘KNCC’는 ‘통일선언’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였는데 그 중의 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분단과 갈등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평화와 화해와 해방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시고, 인간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해방시켜서 하나되게 하시려고 고난을 받으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나 다시 부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시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자녀로 삼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역사의 종말론적 미래를 보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선교사역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이 선언문은 분단사상 처음으로 한국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통일선언문을 만들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 어느 쪽도 그리고 어느 정권 그 누구도 감히 분단의 죄책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분단의 죄책을 먼저 고백한 것은 분단된 조국의 남과 북 쌍방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고백”은 “분단체제 안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어 왔던 일이 우리의 죄임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고백”에서 먼저 출발하고 있다. 그런 후에 한국 민족의 분단은 “세계 초강대국들의 동서 냉전체제의 대립이 빚은 구조적 죄악의 결과이며, 남북한 사회 내부의 구조악의 원인이 되어 왔다. 분단으로 인하여 우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마 22:37-40)을 어기는 죄”를 범해 왔다고 고백한다.

한국기독교협의회는 계속해서 “...우리는 갈라진 조국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을 미워하고 속이고 살인하였고, 그 죄악을 정치와 이념의 이름으로 오히려 정당화하는 이중의 죄를 범하여 왔다. 분단은 전쟁을 낳았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쟁방지의 명목으로 최강 최신의 무기로 재무장하고 병력과 군비를 강화하는 것을 찬동하는 죄(시 33:11-20, 44:2-7)를 범했다”고 고백하였다. 나아가서 우리 한국교회가 “민족분단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침묵하였으며, 면면히 이어져 온 자주독립정신을 상실하는 반민족적 죄악(로마서 9:3)을 범하여 온 죄책을 고백”하였으며 또한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는 죄(요한 일서 3:14-15, 4:20-21)를 범했음”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이며, 분단에 의하여 고통을 받았고 또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한 죄이며, 그들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지 못한 죄이기에(요한일서 3:17)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 죄책을 고백한 것이다.

이러한 죄책고백과 함께 우리의 신앙도 새로워져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 민족에게 한반도를 맡겨주신 하나님은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남과 북으로 나눌 수 없는 땅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땅을 우리는 세계의 이념적 대결로 그리고 민족간의 전쟁으로 나누어지고 말았으며 아직도 이 땅에서 가장 사악한 적으로 원수로 생각하여 총칼을 겨누고 있다. 그로 인하해서 남과 북은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생명죽임의 분단 속에서 신음하며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통일의 신앙은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과 함께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의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리시는 생명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면서 둘로 나누어진 것을 하나되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정의평화를 분단된 한반도에서 이룩해 나가는 그것이며 이러한 신앙으로 세상을 섬기고 봉사해나가는 그것이다.

둘째, 이러한 죄책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또한 새롭게 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민족분단이라고 하는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여야 한다. 세계 강대국들이 그어 놓은 민족의 분단과 남과 북의 전쟁을 통해 더욱 분단을 고착시켜버린 민족의 분단이라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언자 이사야가 본 메시아의 모습을 키가 크고 뚱뚱하며 화려하고 멋진 모습이 아니라 고난받는 종으로서 무거운 짐을 지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사야 53장)인 것이다. 사도 바울 역시 에 억눌리고 짓눌려 작아져 버린 난장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꼭 같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어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한다.(빌립보 2:5-8) 이사야와 바울이 본 그리스도의 모습은 무겁디무거운 십자가를 지시다가 지시다가 그 무거운 짐에 짓눌려 작아져버린 난쟁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세계분단의 멍에와 죄악을 짊어지시다가 지시다가 그 무겁디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려 작아져버린 난쟁이가 되셔서 우리 한민족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평화통일의 신앙은 민족분단의 상황 속에서 절규하고 있는 남과 북의 민중과 민족의 신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신음과 절규의 소리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외침을 발견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반도 안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분단의 집자가를 함께 짊어지고서 하나님의 생명정의평화를 우리 한반도에서 이룩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셋째, 평화통일을 향한 교회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밥상공동체 모습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잔치집과 비유했고 먹고 마시는 것을 자주 말씀하셨으며, 자신이 친히 잔치집에서 포도주를 공급(요 2:1-11)하기도 하였다. 예수의 적대자들은 예수가 먹기를 탐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을 때(마가 2:16; 마태 11:19; 누가 7:34) 예수는 “잔치집에 온 신랑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금식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마가 2:19)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하는 변두리의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어울린다는 것, 즉 밥상공동체를 이룩하셨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예수는 밥상의 머리(주인)로서 함께 먹고 그리고 억눌리고 소외된 민중들을 따뜻하게 대접하였을 뿐 아니라 “서로 원수된 자들이 화해와 대화를 위하여 한 자리에 모이는 밥상머리의 주인(초대자)”으로 이해한다. 밥상공동체의 머리이신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 곧 구원의 밥상을 차려주셨고 친히 우리들에게 그 밥상의 먹이가 되어 주셨던 것이다. 

밥상공동체로서 교회란 그리스도를 평화의 종, 밥상공동체의 종으로서 고백하면서 민중의 밥의 정의를 위해서 그들의 복지를 위해서 밥상공동체를 마련해야 한다. 밥상공동체로서 교회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남북 교회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 남북의 모든 사람들이 만나 먹고 마시고 화해하고 하나되는 밥상공동체를 마련하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밥상공동체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심지어 원수된 사람들까지도 모여서 사랑으로 만나고 먹고 마시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남북의 형제․자매들이 예수의 밥상공동체의 정신에 따라 밥상의 종이 되어 아시아의 밥의 정의를 위해서 그리고 세계의 밥의 정의를 위해서 밥상공동체를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곳에 예수는 현존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우리는 구원의 예수, 평화통일의 예수를 만나는 것이요 그리고 그곳은 민족의 즐거움이요, 희망이요 평화통일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예배드리고 성찬식 밥상에 함께 앉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어 마실 때 그리스도를 평화의 종으로 고백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밥상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남과 북으로 헤어진 식구들이 한 밥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날에 분단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져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비로소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화해의 주님으로 고백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것 중에 하나가 평화통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선교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분단과 그 분단에 대한 죄책고백 함께 한반도의 평화통일을통해 세계에 평화로 봉사하고자 하는 신앙의 마음으로 지난해 여름학교에서 함께 작성한 고백기도를 다시 한번 더 고백해보자.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이 한반도의 평화와 생명과 정의의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분단의 아픔을 가진 남한과 북한의 평화와 화해를 원하시는 하나님, 세계사적으로는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냉전이 그쳤으나,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이념적 대립과 갈등으로 평화를 이루는 일이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념을 넘어서는 참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와 공의의 실천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를 받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며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로운 한반도가 되게 하옵소서. 비록 남북관계와 국제정세가 경색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북한 주민을 위한 생명의 나눔과 사랑과 평화를 만드는 일을 지속적으로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 땅에 임하게 하옵소서. 아멘”

©WCC, 지난 WCC 10차 총회 기간 중 통일전망대를 방문한 WCC 총회 참가자들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리본을 달고 있다.


하율이 아빠 신학앎

에큐메니칼 기도 - 보츠와나, 짐바웨

2014.05.27 13:46

보츠와나, 짐바웨

2014년 5월 24일 - 5월 31일

© WCC


중보기도

감사제목:

  • 보건전문가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에게 의료지원과 교육을 제공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보츠나와 기독교 연합과 짐바웨 교회 연합이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 마림바, 북, 음비라(음비라는 금속가락을 엄지손가락으로 튕겨서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 찬양제 여러 찬양자들이 함께 모여 그리스도를 찬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 짐바웨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가족들이 돌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

  • 국가 위정자들과 경제 발전이 가져다주는 것 안에서의 그들의 성공, 교육 그리고 국민들의 의료복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 지주들과 소작농들, 그리고 정부의 토지개혁에 의해 추방되어진 소작농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 잠비아의 인종차별에 대한 화해가 평등과 존중의 사회로 인도할 수 있게 기도합니다.
  • 에이즈로 인한 고아들을 우해서 기도합니다.
  •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도움을 주님께서 도와 주시길 기도합니다.

 

기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주님은 우리 세상을 구성하기 위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떨어져 나가버린 것들을 위에 지혜를 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주여 우리 공동체 안에 무너진 영적 담을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에게 주님의 지혜, 능력, 사랑의 영성을 불어 주옵소서.

By Rev. Cheryl Dibeela, Gaborone, Botswana. Africa Praying: A Handbook on HIV/AIDS Sensitive Sermon Guidelines and Liturgy, ed. Musa W. Dube, WCC, 2003, pp.57, 175, 187-88.


짐바웨로부토 온 기도

주님, 우리의 생명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풍요로움 가운데 우리는 가난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우리는 이러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삶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질병, 죽음, 그리고 파괴에 둘려 쌓여 있습니다.
우리는 욕망의 유혹을 받고, 그리고 계속 당신의 돌보심을 희망하고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도하고, 진한 감정을 가지고 소리내어 울기도합니다.
우리의 희망과 피난처이신 주님께 갑니다.
힘들 때 조차도 우리이게 웃음을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 주님, 주님과 함께라면 우리가 곤경에 처할지라도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By Rev. Farai Chirisa, Zimbabwe. www.ctal.org.uk/zimbabwe.htm



기도원문: http://goo.gl/nhF0kT


하율이 아빠 Ecumenical Prayer

신대원생 평화건설과 갈등해결 웍샵

2014.05.20 14:29

이번 소개는 신대원생들(목사님들도 참석이 가능합니다.)을 위한 좋은 웍샵이 있어서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예장통합 총회 사회선교부에서는 에큐메니칼 신학이 지역 교회에 지속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로 바로 "신대원생 평화건설과 갈등해결 웍샵"입니다.


강사는 현 기독교평화센터 소장을 맡고 계신 오상열 목사님이 이며, 개최 일정은 5월 26일 오전 9시부터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진행이 되고 참가비는 1만원입니다. 20명이 체워지지 않을 시에는 웍샵이 취소 된다고 하니 호남 지역 목회자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개요와 첨부 된 한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댓글에 비밀 답글로 소속(학교/교회), 이름, 직분, 연락처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평화 웍샵 개요.hwp



신대원생 평화건설과 갈등해결 웍샵 개요


교회는 본질적으로 평화교회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2:14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라고 예수의 정체성과 사역을 요약하고 있다. 따라서 평화의 비전은 우리의 비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비전이다.


한국사회는 나날이 갈등과 폭력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고 교회 또한 이 현실에서 예외가 아니다. 세상 가운데서 화평케하는 자로서의 역할을 교회가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 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 주소이다. 따라서 평화교회로서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훈련과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신대원생이 참여하는 평화건설과 갈등해결 웍샵은, 내면의 평화로부터 관계의 평화, 구조의 평화, 하나님과의 평화 등 다양한 평화의 차원을 다룬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관계의 평화 핵심으로서 갈등해결을 위한 지식과 기술, 태도를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이다.


다양한 활동과 나눔을 통해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성경에서 배우는 갈등해결의 지혜, 갈등의 단계와 역동, 갈등대응유형, 갈등분석 등의 실제적인 내용을 다루게 된다. 기초과정이지만 이 웍샵만으로도 일상생활의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초적인 역량을 쌓을 수 있다.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통전성과 참여자 중심, 활동과 성찰, 활동과 놀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실생활의 변화와 교회에서의 적용이 가능한 웍샵이다.



©WCC, 지난 WCC 10차 총회 때 통일전망대를 찾은 한 참가자가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소망하며 기념타올을 펼치고 있는 모습



 

하율이 아빠 Ecumenical News

WCC 10차 총회를 참석하고

2014.01.04 01:28

WCC 10차 총회를 참석하고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오이코스 신학운동을 통해서 에큐메니칼 신학을 접해왔다. 또한 오이코스 신학운동을 통해서 들은 에큐메니칼 신학의 큰 어울림의 장이라는 WCC 총회를 기다려 왔었다. 그리고 KETI(Korea Ecumenical Theological Institute) 참자자의 일원으로 세계교회사에 남을 WCC 10차 총회에 전체 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이제 총회가 끝난지 2주가 되어 가고 있다. 과연 나는 이번 WCC 총회를 통해서 무엇을 배웠을까? 그 생각을 조금 정리해 보려고 한다.


WCC와 오해

한국교회가 WCC 총회를 유치했을 때 교회의 반응은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갈렸다. WCC는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일처다부제, 용공주의 등을 수용하고 그것을 널리 장려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열려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물론 WCC는 이러한 것을 허락하고 장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포털사이트에 가서 ‘WCC란’으로 검색을 하면 온통 잘못된 정보로만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서울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가본 사람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나는 작년 2012년 좋은 기회가 있어서 두 번의 큰 에큐메니칼 대회에 스튜어드로 참석을 했었다. 하나는 CWME(세계선교와 복음화 위원회)의 사전 총회였고 다른 하나는 제 7회 아시아 신학자 회의였다. 두 대회 모두 반대자들이 WCC를 향해 지적한 것들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아침기도와 성경공부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기도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분명 반대하는 사람들은 WCC와 에큐메니칼 신학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반대를 하거나, 알면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 같다.


이번 WCC 총회는 세계 각지에 떨어져 있던 자매, 형제들이 모여 예배, 기도, 성경공부를 하였던 기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시작 된 기독교는 2000년 이라는 시간을 흘려 보냈다. 세계 각지로 퍼져간 교회는 정착한 곳의 문화와 결합을 하면서 그곳의 문화를 반영을 하며 성장해왔다. 여러교회가 세계 각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탓에 그 모양을 각기 제각각이었다. 얼굴과 손 외에 신체의 다른 곳을 노출하지 않는 복장을 입고 터번을 착용한 정교회 사제들로 부터 편안한 청바지 차림의 개신교 목사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은 정말 다양했다. WCC를 찬성하는 측은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반대하는 측은 자신의 교회만을 인정해서 인지 이를 보고 혼합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정교회처럼 2000여년 정도의 긴 역사를 가진 교회가 한국장로교처럼 120여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진 교회를 보았을 때 비판하지 않았다.



©하율이 아빠


WCC 총회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이 되고 있을 때 벡스코 앞까지 오셔서 반대를 하시는 분들을 보았을 때 한국교회의 낮은 수준에 창피함을 느꼈고 또 초청한 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WCC kills church’등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하시는 분들부터 한쪽에 무리를 지어 앉아서 찬송과 통성기도를 하며 사탄의 세력이 물러가라고 외치는 분들, 폐회 예배 때 단상에 올라가 회개하라 외치다 제지 당하신 분을 보면서 앞으로 성숙을 위해서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이 멀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율이 아빠


WCC와 생명, 정의, 평화

이번 WCC 10차 총회는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3차 총회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린 총회이다. 한국에서 아시아 두 번째 총회가 열린 배경에는 2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의 중심 축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옮겨 가고 있고 오순절 교회가 세계교회의 하나의 큰 축으로 성장을 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 신자유주의, 지구촌 곳곳의 분쟁 등에 대해서 교회의 책임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 총회가 열렸고 이러한 상황에서 WCC는 30년 만에서 새로운 선교문서(함께 생명을 향하여: 기독교의 지형 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를 발표하였다.


1983년에 밴쿠버 총회에서 채택한 선교문서(선교와 전도)가 기독론 중심이었다면 이번 부산 총회에서 채택한 선교문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틀 안에서 성령의 선교와 생명을 강조하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복음의 우주적 범위, 선교와 전도의 중심축의 이동, 신자유주의 맘몬 숭배에 대한 대응, 복음과 종교간 대화의 문제"등은 이번 문서에서 새롭게 추가된 내용들이다. 이제 선교는 인간 영혼 뿐만 아니라 온 피조물을 넘어 온 우주를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총회 때 열린 선교 주제회의를 참석을 하면서 선교의 범위가 인간을 넘어서 온 우주로 확장이 된다면 이제 선교는 조직신학 같은 존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먼저 열린 아시아 주제회의에서 다뤘던 내용을 이미 선교에서 다루고 있었고 또한 계속해서 다뤄야 할 여러 주제들의 내용이 이미 선교 주제회의 때 어느정도 다뤄졌다.


선교 주제회의 때 발제자로 나선 남미 오순절 교회 출신의 세실리아 난하리 목사는 남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 경시현상, 인신매매, 성폭행 등을 설명을 했다. 특히 성폭행에 관한 사건은 언론사들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어내기 위한 단순한 기사일 뿐이라고 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원인이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 다가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교회는 성경은 받아 들였지만 여성은 받아 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여전히 교회는 이런한 문제들을 논쟁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실리아 난하리 목사는 남미는 생명이 존중 받지 못하고 있는 대륙이라고 말하면서 소비적인 자본주의와 개발지상주의는 복음과 거리가 먼 것이며 선교는 이러한 것들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WCC


선교 주제회의 만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정의 주제회에서는 아프리카에 일어 나고 있는 HIV와 AIDS에 감염된 사람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때 말라위 출신의 19살의 쉘린 음뷸라 양은 “나는 환자이지만 내 아이는 AIDS에 감염 되지 않기를 원하며 이것 때문에 차별 받지 않기를 원한다.” 라고 말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박수와 공감을 보내주었다. 평화 주제회의때 이화여대 장윤재 교수는 핵발전소의 사용의 여부는 핵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수위의 위험이며 이것이 평화 뿐만아니라 생명까지 위협을 한다고 했다. 폐회 예배 때 설교자로 나온 남아공 성공회 마이클 랲슬리 신부는은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다 남아공 정부로부터 테러를 당해 두 손이 없고 한쪽 눈은 실명을 당했다. 이러한 분이 정의와 평화에 대해서 설교를 할 때 듣는이의 마음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WCC


아시아 주제회의 또한 만만치 않은 내용들이 언급되었다.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모여사는 대륙,전세계 종교의 요람인 대륙, 그러나 부정의, 전쟁, 고의적 생명 파괴, 신자유주의로 인해 수 천년 동안 지켜온 차이의 존중과 조화가 무너지고 있는 곳이 아시아라고 했다. 때문에 공동체의 화해가 깨지고 인종, 종교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지역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러한 문제에 도전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금 당장 한국에서는 일어나고 있지 않는 문제들도 있었지만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책임감과 아픔을 느꼈다.


©WCC


이번 WCC 10차 총회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무너지고 있는 생명, 정의, 평화에 대해서 교회가 어떻게 응답을 해야 할 지를 제시하였다. 생명이 존중 받지 못하고 있는 곳에서 생명을 살려야 하고, 정의가 무너지고 있는 곳에서 정의를 세워야 하며, 평화가 깨진 곳에서 다시 평화를 이뤄야 한다. 그러나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핵문제에 대한 WCC의 입장을 정할 때 한국, 일본교회와 영국교회의 입장이 달라 핵문제에 대한 WCC의 입장이 결정되지 못하고 내년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나오지 않았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나는 이번 총회가 거대한 담론을 형성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지역교회가 각자의 상황에 맞춰서 만들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WCC


WCC와 나

에큐메니칼 활동가를 꿈꾸는 나로서는 이번 WCC 10차 총회는 정말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해주었고 또 많은 비전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어떠한 일들에 책임을 져야 할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매일 매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특별히 선교 주제회의가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 아시아 주제회의는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아시아인입니다. 아시아인 모두가 나의 형제이며 자매이며 가족입니다.” 작년 여름 아시아 신학자회의 때 스튜어드로 참석을 하면서 느낀 것이다. 이번 WCC 10차 총회를 참석하면서 또 다시 한번 느꼈다. 아시아 주제회의 때 발제자로 나선 분들은 하나같이 아시아 문화, 종교, 다양성, 그리고 신자유주의로 인한 피해를 이야기 했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또 어디에서 어떻게 사역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앞으로 다음 총회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8년 뒤 어떤 이슈가 우리 앞에 놓이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열심히 에큐메니칼 신학운동에 헌신하여 하나님의 집(oikos)를 잘 돌보고 싶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하율이 아빠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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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ㅇ

    한국교회의 낮은 수준에 창피함을 느꼈다구요? 진정 평화를 추구하시나요? 정의요? 인본주의적 학문을 보시는 호기적인 편향이란 생각은 안하시나요?

  2. 글쎄요 어떤부분을 인본주의라고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 정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한다면 인본주의가 아닌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작년 WCC 10차 총회 때 벡스코 앞에 오셨는지는 모르나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셨다면
    제가 한국교회의 수준이 낮다라며 비판한 것은
    양반 수준의 비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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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비

    하율이 아빠,
    WCC 가 외치고 있는 명분과 구호에 미혹되어서 전혀 오해하고 계시네요.
    유튜브에서 "WCC와 프리메이슨의 종교통합"이라는 동영상을 보시기 권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서 너무 길어질까봐 이만하겠습니다.

  4. 그래요 한번 참고해 보죠
    대신 야고비님도 이곳 블로그에 게시 된 글들을
    열린 마음으로 잘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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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비님 님이 말씀하신 동영상은 완전히 날조입니다. 반성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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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비님 님이 말씀하신 동영상은 완전히 날조입니다. 반성하세요.

  7. 휸님도 보셨나 보네요
    저도 그 영상을 봤는데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8. Blog Icon
    쁄라

    감사한 마음으로 좋은 글 공유합니다.

  9. 아이쿠 부족한 글을 공유까지....
    감사합니다!! :-)

  10. Blog Icon
    뉴제나

    분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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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지나갈수 없어 한자 적어봅니다
    wcc는 혼합종교입니다
    wcc를 처음 창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다른 곳에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에 중들이 와서 설교하고 마리아를 숭배하고
    성경 구약에 보면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십계명에도 우상 숭배하지말라고 하셨지요
    그런데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지요
    분별하시고 자기 영혼을 지키십시오
    잘 모르시겠다면 이기웅 목사님 설교를 들어세요

  12. jjj님 무슨 근거를 가지고 WCC가 혼합종교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WCC의 창시자가 있나요? WCC가 개인의 것이 아니고 세계교회(교단)의 연합체이라는 것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님께는 마태복음 7장 12절과 에베소서 2장 8-9절을 권유합니다.
    본인과 남의 구원의 판단은 님의 잣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남에게 '너는 지옥가 구원 못 받아'라고 말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겠죠.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접근했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 사람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자신의 행위에 만족함만을 가질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기웅 목사님이란 분을 추천을 하니 저도 추천을 해드리죠. 에큐메니컬에 대해서 잘 모르시겠다면 김의신 목사님과 박성원 교수님의 설교를 추천합니다.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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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중요한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내용이 없던데요

  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는 부정한 적이 없는데...
    이건 제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ㅎㅎㅎ
    그저 저의 경험담과 앞으로의 작은 계획일 뿐입니다 ㅎㅎ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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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율이 아빠
    시위하시는 분들을 보고 부끄럽고 한국교회가 되빌전해야 된다고요? 그분들은 당신을 같은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께 죄송스러워서 옷을 찢으며 대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분들 입니다. 내가 그때 wcc실태를 알았으면 감옥가는 한이 있더라도 다 불태워 버렸어요. 아세요? 당신이 지금하는 행동 동성애를 옹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게 아니라 사탄을 사랑하고 있다는거 아시냐고요. 정신차리세요. 당신이 진정 천국 못 간다는걸 제발 아시고 그 악에 무리에서 빠져나오세요. 에큐메니컬이 진리라고 믿으시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예수님만이 진리이고 종교통합이나 서로에 종교를 존중하는 일은 기독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6. 하나님 사랑한다 하시며 화내고 욕쓰고 가시네요 ㅋ

  17. Blog Icon
    바람

    WCC는 하나님이 부는 진노의 바람이라 생각이 드네요. 관세음보살 아멘 하는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거 같나요?모든 죵교들이 하나가 되는것이 주님의 뜻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