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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10th Assembly in Pusan(WCC 제 10차 총회)/WCC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오해

Ⅱ.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오해 - 8. WCC는 공산주의를 추구하는가?(WCC의 정체)

WCC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오해


이형기 (장신대 명예교수)

Ⅱ. WCC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오해

8. WCC는 공산주의를 추구하는가?


1937년 옥스퍼드 ‘삶과 봉사’ 세계대회는 모든 정치형태와 경제이념들을 초월하는 교회의 인류사회에 대한 책임을 표명하였다. 그리하여 1948년 암스텔담 제1차 WCC 총회 역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모두를 비판하고 넘어서는 예언자적인 사회윤리의 입장 혹은 초월적이면서도 참여적인 사회윤리의 입장을 보였으니, 향후 WCC는 정치적 형태와 경제적 이념들을 넘어서서 JPSS와 JPIC 등 복음이 요청하고 불신자들도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는 중간 공리들에 입각한 사회윤리의 실현을 추구해 왔다. 암스텔담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기독교회는 공산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같은 이데올로기 모두를 거부해야만하고, 또 이러한 극단적 형태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가정으로부터 인간을 벗어나게 해야한다. 이 둘 모두는 지킬 수 없는 약속들을 해 왔다.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경제정의를 강조하며 혁명이 완수된 후에는 자유가 자동적으로 올 것이라고 약속한다. 반면에 자본주의는 자유를 강조하면서 정의는 자유기업의 부산물로서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것 역시 그 거짓이 들어난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그리하여 정의와 자유가 다른 한편을 파괴하지 못하게 하는 새롭고도 창의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책임일 것이다.1


그리하여 제Ⅲ분과에 의한즉, 암스테르담은 자본주의 나라이든, 공산주의 나라이든, 이 나라 안에 있는 국민과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세상에 참여하면서도 세상에 대하여 초월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이미 지적한 옥스퍼드(1937)의 긴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암스테르담의 입장이 1980년대 말 공산권의 붕괴에 의하여 돋보이는 동시에, 오늘 날 시장 경제 원리에 의하여 지구촌을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고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대하여 무감각해진 20세기 말의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성케 한다 하겠다.


©물길손길, 1948년 칼 맥킨타이저가 설립한 ICCC(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국제기독교협의회) WCC가 용공이라는 주장은 ICCC로부터 시작하였다.


따라서 WCC는 결코 ‘용공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저들의 비난과 중상모략은, 1990년 이전 ‘냉전구도’ 속에서 보수파 기독교권이 동구권 및 구 소비엣 체제 안의 교회들의 WCC 참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발하면서 시발되었다. 그리고 WCC가 북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준 경제원조가 그 나라의 게릴라들에게로 흘러들어 갔다고 하는 소문으로 보수파 기독교는 WCC를 더욱 더 ‘용공’으로 매도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 한국 보수파 개신교 역시 1990년 이전 ‘냉전구도’ 및 ‘반공이념 체제’하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용공’으로 몰았다. 하지만 이미 언급한 대로 WCC는 초이념적이면서 현실 참여적이다. 이를 알지 못하는 한국 보수파 개신교는 결국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신봉하면서, 오직 ‘북한’을 염두에 둔 ‘반공이념에만 사로 잡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보수파 개신교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터진지 9일 만에 열린 1950년 토론토 WCC 중앙 위원회의 결정을 알지 못한다.


                              ©물길손길, 1954년 제 2차 에반스턴 총회

                              (주제: 그리스도는 세계의 소망)


WCC는 1949년에서 1954년 까지 여러 신학협의회들을 통하여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를 비판하였고, 교회들로 하여금 냉전체제를 반대할 것을 촉구하였다. 예컨대, 1949년 방콕에서 열린 WCC와 동 아시아 NCC들로 구성된 협의회는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혁명“과 ”정의를 말살시키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구별하는 보고서를 내놓았고, 1949년 CCIA(the Commission of the Churches on the International Affairs)는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이것으로 인한 국제적 긴장”을 협의회의 제목으로 삼았다. 히로시마 이후 WCC의 주된 관심은 “군비축소”였고, 1949년 CCIA는 “수소폭탄에 대한 국제적 제어기구”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전이 터진지 9일 만에 토론토에서 열린 WCC중앙 위원회는 “우리는 정의를 확장하고, 싸우고 있는 양대 세력의 화해를 시도함으로써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세계질서의 도구인 UN 으로 하여금 police action(국제평화질서 유지를 위한 국지적 군사행동)을 통하여 한국에 관여할 것을 공인하였다.” 그리고 WCC실행 위원회는 1951년 세계의 정치적 갈등 이면에는 심오한 경제문제도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러한 WCC의 태도와 행동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한 중공은 WCC를 탈퇴하여, 향후 40년 동안 WCC와 별거해야만 했다(1991년 캔버라에서 다시 WCC 에 가입).2

Ⅲ. 맺는 말

우리 한국 개신 교회는 이상과 같이 WCC와 WCC 중심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하고, 특히 WCC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잘 파악하면서 제10차 부산 WCC 총회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사역에 힘입어 정교회, 성공회, 개혁교회, 루터교회, 감리교 등 140개국의 349개 교회들(교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사도적 신앙 차원에서 코이노니아, 세례 성만찬 사역 차원에서 코이노니아, 그리고 복음 전도와 하나님의 선교 차원에서의 코이노니아를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이 땅 위에 앞당겨 구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나라 혹은 새 하늘과 새 땅은 교회 공동체의 다양성 속의 일치, 인류 공동체의 다양성 속의 일치, 그리고 창조 공동체의 다양성 속의 일치가 완성되는 나라일 것이다(참고 : God’s Creation and our Unity, 2012).



  1. 27)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Harper & Brother's, 1948), Section lll. 195
  2. 28) Ibid., 24-25, 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