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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10th Assembly in Pusan(WCC 제 10차 총회)/WCC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오해

Ⅱ.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오해 - 1. WCC는 성경을 어떻게 받아드리는가?(WCC란 무엇인가?)

WCC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오해


이형기 (장신대 명예교수)

Ⅱ.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오해

1. WCC는 성경을 어떻게 받아드리는가?


구약의 구속사를 배경으로 하는 하나의 사도적 복음(the Gospel Tradition)은 성경과 교회전통들의 원천과 통일성이다(몬트리올 신앙과 직제, 1963). 1927년 제1차 로잔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는 복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세상을 위한 교회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항상 복음이어야 한다. 복음은 현재와 미래를 향한 구속의 기쁜 메시지인 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성령은 온 인류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어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셨고, 무엇보다 구약 안에 주어진 그의 계시를 통해서 그의 오심을 준비하셨는데, 때가 차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성육하사 인간이 되신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로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삶과 가르침, 그의 회개에로의 부름, 그의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와 심판에 대한 선포, 그의 고난과 죽음, 그의 부활과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로의 승귀, 및 그의 성령의 파송을 통하여 우리에게 죄의 용서를 베풀어 주셨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충만함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계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보이신 완전한 사랑에 호소하시어 우리들을 신앙에로 부르시고, 하나님과 인간을 섬기기 위한 자기희생과 헌신에로 부르신다(Ⅱ. 9-11).1


이상과 같은 ‘복음’은 세상을 위한 “구속의 기쁜 메시지”로서 성경의 중심 메시지이다. 이 “복음”은 인간을 “신앙”에로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이 없으신 사랑으로서 정통 기독론적기고 정통 삼위일체론적인 틀 안에서 주어졌다. 바로 이 “복음”을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믿음으로 받아들여 의롭다함을 받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가 다름 아닌 ‘교회’ 공동체이다.

그런 즉, 신구약성경에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 1978년 벵갈 문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성서는 두 개의 책 묶음 속에서 하나의 주제에 의해 함께 모아진 다양한 많은 책들의 모음집이다. 우리는 그것들 속에서 전 창조세계와 민족들과 개개인의 삶을 다루고 계시는 하나이며 동일하신 하나님을 만난다. 구약과 신약의 다양한 증언들 안에서 통일성을 만드는 분은 바로 그 분이시다. 구약성서에서 우리는 특별히 하나의 특정 민족을 다루시며 그 민족을 통하여 모든 민족을 다루시는 그분을 만난다. 신약성서에서 우리는 그의 가장 충만하고 결정적인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들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그분을 본질적으로 만난다. 성서의 이 하나님은 세계를 보전하고 그가 그것을 위해 세우신 계획을 성취하는 데에 있어서 인간존재를 자신의 파트너로 원하시는 분으로 그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분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라고 말씀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시다.(104-105)2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1983)에 따르면, 이상과 같은 ‘복음’(the Gospel Tradition)을 중심으로 하는 혹은 그것을 통일성으로 하는 성경은 ‘복음’에 대한 증언들로서 영감 된 말씀들이다. 그리하여 성경에는 다양한 메시지들이 있다.

성경을 형성하기 위하여 함께 묶여진 책들은 역사의 과정 전체를 통하여 심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문학적 통일체( a literary unity)를 이루었다. 어떤 저작들은 포함되고 여타의 저작들은 제외된 사실은 교회역사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을 주어왔다. 정경은 다양한 증언들을 모아 놓았고 석의의 역사를 결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다양성이었다.(84)


그러나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은 각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은 신약의 특수성을 6가지로 본다.

첫째로 신약성서의 특수성은 구약을 능가하는 한에 있어서 주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다. 그분의 모습에서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자가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그의 동반자로 삼기 위함이다. (108)

둘째로 “말씀 그 자체가 육체가 된 ‘성육신’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와는 비교될 수 없는 친숙한 방법으로 자신이 세상에 오셨고 세상 속에 자신을 관여시키셨다.”(108)

셋째로 그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고난 받는 종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그의 독특한 희생적 삶과 죽음을 통하여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셨고, 모든 인간이 용서받은 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러 놓으셨다. 그런즉, 구약의 제사법과 규례들은 그것의 적합성을 상실하였다.(108)

넷째는 ‘부활’을 통하여 계시되고 약속된 미래 지향적인 초역사적 정의와 평화의 샬롬의 세계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인간 개인의 삶과 우주적인 역사의 궁극적인 운명이 명시되어졌다. 삶과 역사가 이 세상의 한계 안에서 완성될 수 없으며,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죽음 너머에 있는 삶이고, 역사의 최종적 목표가 모든 것의 존재하는 가능성들을 넘어선 세계의 전체적인 변형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그것에 의해서 죽음의 최종성에 대한 구약의 믿음과 하나님의 그의 피조물들을 다루시는 경세가 죽음 이편의 삶으로 제한된다고 하는 구약의 믿음이 대치되고 무효화되었다. 그리고 완전한 평화와 정의의 세계에 대한 구약의 희망은 변화되어져서, 그것의 완성은 역사를 넘어서고 있다. (108-19)

다섯째는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파송된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은바 됨에 따라, 향후 구약성서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새롭고 보편적인 차원을 획득한다고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하나님의 백성 혹은 그리스도의 몸속으로 합체시키시고, 이들을 통하여 모든 민족들을 세계적인 공동체로서 교회로 삼으시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 성서가 살아있게 하신다. “따라서 구약성서 안에서 한 특정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활동을 가리키고 있는 관심은 모든 세계에로 확장된다. 그리하여 인간들 사이의 사랑과 정의가 더 이상 한 민족 안에 제한되어지지 않고, 거룩한 전쟁이나 정복한 적들을 진멸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거부되어 진다.”(109)

여섯째로 “구약성서를 능가하는 신약성서 속의 많은 것들이 미미 구약성서 안에서 발견된다.”


둘째로 「... 성경의 권위와 해석」은 구약의 특징들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이는 신약을 능가하는 구약의 특수성에 다름 아닌데,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창조주시요,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님이시요,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시는 심판자라고 하는 것을 구약으로부터 알게 된다.”(112)

둘째로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위엄과 은폐성이 강조되어 있고, 세계정치에 대한 관심과 질투하심이라 불리는 그의 피조물들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이 강조되어 있다.”

셋째로 구약은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이들이 우주 안에서 하나의 관리인으로 자리 매김 되었으며, 자연에 대한 더 큰 관심들이 나타나 있고, 우상숭배 유혹에 대한 경고가 강조되고 있으며, ...“.

넷째로 개인도덕과 개인주의적 윤리가 아니라 구조 악과 구조적인 변혁에 대한 요구들이 있으니, “사회의 구조들에 대한 관심, 정의에 대한 요구, 빈곤과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 하나님에 의해 버려짐에 대한 슬픔과 불평에 대한 관심, 그리고 매일의 삶을 위해 지혜를 부여하는 신앙의 중요성, ...”.

다섯째로 신약은 개인주의적이고 수직적이며 영적인 반면 구약은 공동체적이고 수평적이며 현세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들(네 번째에서 언급된 구약의 특수성들)은 신약성서가 그리스도의 계시와 신앙의 철저 화, 그것과 부합되는 삶의 개인적인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구약성서에서 보다 덜 분명하게 주목을 끈다. 하지만 이 특별한 구약의 요소들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이 무시될 경우,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시의 맥락을 잘못 해석하게 된다. ... 그런즉, 우리는 개인주의적이고 내향적이며 이상적인 틀 안에 갇힐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약이 그것의 목적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특히, 우리 시대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윤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전보다 구약성서의 넓이와 깊이를 필요로 하고 있다.(113)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1983, 제2판)은 아래에서 이와 같은 복음의 증언들로서 성서의 영감을 3가지로 지적할 때, “성경의 내용 그 자체가 권위 있는 것으로 입증되는 것이 영감이다”라고 본다. 이는 적어도 이상의 3문서들에서 소개된 방식의 해석에 따른 성서의 내용이지만 말이다.

1. 성서는 파생적이지 않으며(non-derivative) 원형적인(archetypal)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성격상 독특하며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어느 한 구릅이 구약성경 안에서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독특한 것이며, 따라서 동양종교로부터 파생되어 질 수 없다고 하였다. ...

2. 교회의 역사 속에서 성서는 거듭 반복해서 신앙의 원천으로서 입증되어 졌다. 이러한 이유로 성서는 오늘날 우리들이 그것의 주장에 대해 복종해야 함을 주장할만한 자격을 지니고 있다.

3. ... 연구보고서들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성서의 내용 그 자체가 권위 있는 것으로 입증되어야 하며, 그들은 성서의 권위를 위한 그 어떤 외부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을 포기하는 데에 동의한다. 권위는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86-87)3


다시 말하면 본 저서는 영감론에서 출발하여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들을 감화시키는 성경의 메시지를 중요시한다. 적어도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사도들의 복음전승과 그것에 대한 증언들일 것이다. 아래의 인용을 읽어 보자.

만약에 확실하게 성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주장이 사람의 마음을 강권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체험되어 진다면, 성경 뒤에는 하나님 자신, 즉 성령의 활동하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증거를 우리에게 나타내신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증거가 아닌가? ... (87-88)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등 성경해석자들은 결국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 내용으로 우리들을 인도하기 때문에 오늘날도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성서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적인 해석이 성경이 성령의 저작물로 알도록 인도할 때마다, 우리는 이러한 해석에 영향을 준 영감 받은 증인들의 긴 연속선을 기억해야만 한다. 첫 번째 증인들은 성령에 의해서 부름 받고 감화되었다. 그러나 일단 그것의 마지막 최종 형태가 부여된 후, 성경해석자들의 증거는 동일한 성령으로부터 독립된 것이 아니다. 마치 성령께서 예전에 그의 증인들을 부르셨듯이, 그분이 우리에게 이러한 필요불가결한 증거들을 나타내게 될 때 그는 오늘날에도 그렇게 신앙과 순종과 증거를 일깨우실 것이다. 성령은 교회 안에 살아계신다. ... (88-89)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경의 통일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경의 통일성과 아울러 그것의 다양성 그리고 통일성과 다양성의 관계를 중요시 여겨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경으로서의 성경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런즉, 우리는 본문비평과 역사 비평적 방법을 통한 다양한 석의에 의하여 본문의 다양한 의미를 찾아내면서 ‘복음 전승’(the Gospel Tradition)에서 통일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주장에 비추어 볼 때, WCC가 성서를 타종교들의 경전과 동격(同格)과 동가(同價)로 여긴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1. 8) “Christian World Communions”, In Dictionary of Ecumenical Movement(Geneva: WCC, 1991), , 156 이하.
  2. 9)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
  3. 10)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 엘렌 플레세만 - 반 리어 역음/이형기 옮김(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