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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10th Assembly in Pusan(WCC 제 10차 총회)/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4. WCC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2 (WCC란 무엇인가?)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신학적 의미



박성원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중앙위원)


4. WCC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2)


나. 최근의 WCC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WCC의 신앙고백이 의심스럽다.” 이 주장은 사실인가?

이는 WCC의 기본입장을 모르는 견해이다.

WCC 헌장 1조에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Koinonia)이다.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is a fellowship of churches which confess the Lord Jesus Christ as God and Saviour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therefore seek to fulfill together their common calling to the glory of the one God, Father, Son and Holy Spirit.)”라고 밝히고 있다. WCC는 성경,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위에 굳게 선 세계교회 연합체이다.


WCC는 같은 헌장에서 ‘한 믿음, 한 성례전적 교제 안에서의 가시적 일치’, ‘예배와 공동생활’, ‘세상을 향해 함께 증언하고 봉사함’으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어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그 목적과 기능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곧 “저희가 다 하나가 되어... 세상으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성취하기 위한 세계교회의 공동 노력이다.


2) “WCC는 선교에는 관심이 없다.” 이 주장은 사실인가?

이는 전혀 사실무근이다. 위 헌장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한다는 것이 곧 선교라는 사실도 명시되어 있지만 1910년 에딘버러에서 선교와 일치를 위해 전 세계교회가 함께 모인 세계선교대회(WMC)가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직접적 배경인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도 WCC안에는 에딘버러 대회의 전통을 이어오는 “선교와 전도위원회”(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가 지속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무국에는 ‘선교와 전도 일치국’이 설치되어 세계교회의 선교와 전도에 대한 지원과 협력, 선교신학의 성찰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3) “WCC는 용공이다.” 이 주장은 타당한가?

시대착오적 말이다. WCC는 ‘교회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념도 지향한적이 없다. 자본주의도 지지한 적 없고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지지한 적이 없다. WCC는 그 헌장에서 밝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의 신앙고백 위에 서 있다. 중요한 것은 WCC는 냉전시대 때 공산체제 속에 있는 교회도 회원교회로 받아들였고 함께 교제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어떤 정치체제 속에 있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이기 때문이었다.


더욱 중요한 일은 공산체제아래 있던 교회들의 보존을 위해 WCC가 엄청나게 노력했고 그 노력으로 공산권이 무너졌을 때 교회가 다시 부흥할 수 있었다. 북한 교회가 세계교회와 연결되게 한데도 WCC가 도산소 과정을 통해 정치적 장벽을 무릅쓰고 교제를 시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WCC가 용공이란 주장을 한다면 지금 북한교회와 만나며 교제하며 지원하는 한국교회는 모두 용공이다. 한국교회는 북한교회를 남한교회와 연결해 준 WCC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4)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 이 말은 사실인가?

WCC를 전체적으로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가 사회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WCC에는 선교와 전도, 기독교교육 이외에 거대한 양대 산맥이 있다. 하나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흐름으로서 신앙과 일치를 강조하는 면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일’(Life and Work)의 흐름으로서 복음의 사회적 증언을 강조하는 측면이다.


한국에는 WCC가 70, 80년대의 사회상황과 관련하여 인권과 민주화 등에 많은 지원을 했기 때문에 WCC의 사회선교적 측면만 부각되어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고 알려진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이 두 흐름이 팽팽하게 공존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교회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사이에서 갈등했듯이 이 갈등과 견제가 지금도 WCC속에 상존하고 있다.


또한 사회선교에도 두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는 인권이나 민주화와 같은 정치적 증언이고 이것과 대등하게 큰 또 하나의 흐름은 봉사(Diakonia)이다. WCC의 사회선교에는 봉사의 면도 강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번 WCC 총회를 계기로 한국교회는 WCC의 신앙과 영성, 선교와 봉사 부분에도 이해의 폭을 넓혀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양쪽 날개 모두를 통전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WCC의 사회적 증언에 대한 이런 이해의 폭과 연계해서 정말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WCC의 사회적 증언의 신앙적 기반 혹은 신앙적 동기이다. WCC의 사회적 증언은 사회참여 차원이 아니고 복음증언의 차원이다. 다시 말하면 WCC의 사회참여는 복음에 대한 신실성 때문에 이루어진다. 인종주의(racism)에 대한 WCC의 입장이 그 한 예이다. 1954년 제2차 에반스톤 총회에서는 인종주의와 식민주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에반스톤 총회는 “인종, 피부색, 종족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복음과 교회의 본질에 위배된다.”고 선언하고 모든 회원교회가 자신들의 삶과 사회안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나치주의에 대한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선언(Barmen Declaration)이 복음의 정치적 해석이 아닌 정치적 상황에 대한 복음의 신앙고백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WCC 창설이후 바르멘선언과 같은 형태의 고백신앙 운동의 중심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d)이 있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선언처럼, 남아공화란개혁선교교회처럼, 사회적 상황에 의해 신앙 자체가 도전받을 때는 신앙고백적 대응을 해 왔다. WCC가 웁살라 총회이후 인권주의철폐를 위한 프로그램(Programme to Combat Racism)을 설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이다. WCC의 사회증언은 교회의 사회참여, 정치참여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복음의 선포, 신앙의 증언으로 이해해야 함이 옳다고 본다.


5) “WCC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는 올바른 이해인가?

솔직히 말하면 WCC의 신학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WCC는 회원교회들의 다양한 신학이 서로 대화하고 조정하고 공통의 신학적 견해를 찾아가는 문자 그대로 ‘Council’, 즉 ‘협의체’이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한다면 WCC 고유의 신학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WCC안에는 여러 신학노선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자유주의 신학도 존재하고 엄청나게 보수주의적 신학도 존재한다. 정교회의 신학은 한국의 보수신학보다도 훨씬 더 보수적이고 회원교회 중에는 복음주의교회, 성령운동인 오순절 교회도 상당히 참여하고 있다. WCC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 일변도로 비춰진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우리나라에는 WCC가 주로 인권이나 민주화 등 사회적 증언 쪽으로만 알려져서 그렇게 비춰진 면이 있다.


6) “WCC는 다원주의이다.” 여기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WCC는 종교간의 교리를 섞은 적이 한번도 없다. WCC의 궁극적 목적이 분열된 교회가 구조적 일치를 이루어 세상에 하나의 교회를 표방하는 가시적 일치인데 현재로는 이것 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 이유는 WCC 밖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도 그렇지만 WCC안에 있는 양대 교회, 즉 정교회와 개신교회도 결코 서로의 교리를 섞을 수 없다는 입장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조적 일치는 전혀 거론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하물며 종교간의 교리를 섞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은 분명히 한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천도교, 불교, 기독교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함께 독립선언을 했듯이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류의 화해를 위한 세계적 과제 때문에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종교간의 협력과 다원주의는 다르다.


지금까지 WCC에는 공산권의 교회까지도 함께 참여하니 용공적이란 오해를 하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삶의 존엄성을 위해서 일하다 보니 사회참여적이란 오해를 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다른 종교와 대화하다 보니 다원주의라는 오해를 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들을 그야 말로 오해이며 모두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WCC안에는 엄청나게 보수적인 교회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맺는 말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에큐메니칼 운동을 해 온 교회이다. 과거에는 ‘장.감.성.’ 즉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가 늘 함께 복음을 증거해 온 전통이 있다. 장로교회의 경우는 1907년 독노회 구성시, 한국교회 신앙고백 채택, 7인의 한국인 목사 안수와 더불어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에 가입했으므로 최초부터 에큐메니칼 교회임을 천명한 셈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WCC총회를 준비하고 주관하는 경험을 통해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세계 교회가 하나되는데 큰 기여를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이해를 한국교회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서 세계적, 우주적 지평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WCC총회가 그들의 잔치가 아니라 그 속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One Universal Church of Jesus Christ)의 신앙증언과 신앙축제가 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세계교회를 섬기는 귀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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