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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신앙삶

2014.07.29 16:32
본 글은 2012년 8월에 열린 오이코스 여름학교 워크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이번 오이코스 여름학교가 8월 20일(월)-23일(목)가지 전남 장성 한마음공동체에서 "생명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우리를 악에서 이끄소서"란 제목을 가지고 문이 열린다. 오이코스 여름학교란 세계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에큐메니칼신학을 함께 연구하기도 하며 예배, 성서묵상, 특강, 생명밥상, 세계신학자들과 신학 talk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신학캠프이다. 여기에 국내 교수 20여명과 목사 10여명 그리고 세계신학자 7명이 1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신학을 예배로, 성서연구로, 밥상으로, 춤으로 그리고 삶으로 나누어 가지는 재미있고도 유익한 여름학교가 될 것이다. 신학을 하는 대학생들과 대학원 학생들이 100여명 신청을 하였지만 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은 열어놓을 작정이다...

지난해 다룬 주제들인 성정의, 다문화, 동물권, 빈곤과 경제정의, 기후변화, 원자력발전(핵문제), 전쟁과 평화, 한반도 평화통일을 보다 더 심도있게 다루고자 8명의 교수들이 그 주제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신앙고백 등을 연구정리한 것을 5-6장정도로 요약하여 자료집에 싣기로 하였다,

그 중에서 본인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관한 주제가 맡겨졌기에 정리한 것을 여기에 실어본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신앙삶 - 정경호 교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유대 사람과 여러분 이방 사라들을 한 가족으로 만들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에베소서 2:14절, 현대인 성경)

I. 평화와 통일이 이야기

우리는 분단된 지 67년 동안 목청이 터져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찾는데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고 불렀다. 북은 북대로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는 하나의 조선, 백두산의 줄기가 내리어 이 땅은 하나의 강토. 통일이냐 분열이냐 엄숙한 이 시각에, 겨레여 나서라 투쟁의 한 길로 조선은 하나다.”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총칼을 겨눈 1950-53년의 한국전쟁은 너무 끔직해서 남한의 경우 24만 5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실종된 사람이 30만명, 부상당한 사람이 33만명이 훨씬 넘었다. 특히 학살당한 자의 수를 13만명으로 그리고 북한으로 납치당한 수를 8만 5천명으로 잡고 있으며 30만에 가까운 전쟁미망인, 10만명의 고아가 발생하였고 전쟁으로 흩어지고 헤어져서 생사를 알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수가 무려 1,000만명이 훨씬 넘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잠시 휴전을 한지 벌써 어언듯 60년이 가까웠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 미워하고 파멸되기를 바라는 상쟁의 마음으로 대치를 하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II. 본문이해 

오늘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신앙에 굳게 서서 함께 하나가 될 것을 당부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믿음의 같은 형제자매끼리 지난날의 어리석은 분열과 다툼과 상호불신의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유다사람이나 이방인이나 또는 어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 본문의 말씀이다. 나아가서 바울은 자신의 민족은 물론 모든 인류와 만물이 평화를 누리며 함께 하나 되는 통일을 꿈꾸고 있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생명․정의․평화는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면 실현될 수가 없다는 것이 그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7절로 12절까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죄사함을 받게 한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케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밝힌다. 특히 바울은 10절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구원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 곧 통일을 이룩해야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참된 평화와 통일로 인하여 거룩한 하나를 이룩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바울은 2장 14-15절에서 그리스도야말로 원수가 된 둘 중간에 막혀 있는 담을 허물어 버리시어 둘을 하나 되게 하시는 평화의 주(14절)이심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의 이야기 중에서 둘이 하나 된 참으로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는 창세기에 나타나는 쌍둥이 형제, 원수가 된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의 만남이다. 창세기 27장에 의하면 동생 야곱은 늙은 아버지로부터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아버지를 교묘하게 속여 가로채고 만 것 때문에 그들 형제들은 원수가 되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형을 피하여 외삼촌이 거주하는 멀고도 먼 밧단아람이란 곳으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창세기 33장에 의하면 야곱은 그곳에서 14여년을 살면서 결혼하여 두 아내와 많은 자녀를 두고 살았으니 고향이 그리워 결국 생명을 건 귀향길에 들어선다. 그리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얍복강을 건너 형 에서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4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는 형을 보았다. 이러한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 야곱은 겁이 나고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라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바로 그때 형 에서가 달려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동생 야곱을 와락 끌어안았던 것이다. 두려움에 쌓여있던 야곱은 자신을 감싸준 에서를 향해 말하기를,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서로 화해하여 둘이 하나가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형 에서의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는 마음, 따듯하게 환대하는 마음, 넓디넓은 너그러운 마음을 본 동생 야곱은 형님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 같다고 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나눠진 모습과 함께 하나가 둘로 나뉜 에서와 야곱의 모습과 분단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대의 모습을 머리에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원수가 된) 우리 유대 사람과 여러분 이방 사람들을 한 가족으로 만들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엡 2:14, 현대어번역) 
그렇다. 바울에게 보인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가 된 둘 중간에 막혀 있는 분열과 분단의 담을 단번에 허물어 버리시고 나뉜 둘을 하나로 만들어 내신 평화의 주 곧 평화통일의 주이신 것이다. 바울은 한 지역이나 민족의 평화에만 머물지 않고 모든 인류와 세계 나아가서 온 우주의 생명공동체가 평화를 누리며 함께 하나 되는 평화통일의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생명․정의․평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해방의 해인 희년인 것이다. 즉 희년곧 정의를 수반하는 평화의 계약과 그것 위에 수립된 해방의 해는 하나님의 통치적 주권에 대항하는 제국들의 지배, 즉 이집트의 바로 제국, 바벨론 제국, 앗시리라 제국, 희랍제국 그리고 로마 제국과 그 주변 왕국들의 지배라는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의로 타의로 이런 제국들의 지배에 굴복하게 되면, 사회경제적 안전이 파괴되고 평화가 깨어져서 희년의 법의 실현이 강력하게 요청된 것이다. 희년이라고 하는 평화의 계약은 제국들의 억압 속에서 신음하는 뭇 민족들에 대한 약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20세기 중반 초강대국들의 이념과 그들의 이익에 의해 둘로 나누어진 우리 민족을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III. 평화통일을 향한 신앙고백

1988년 한국기독교협의회인 ‘KNCC’는 ‘통일선언’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였는데 그 중의 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분단과 갈등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평화와 화해와 해방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시고, 인간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해방시켜서 하나되게 하시려고 고난을 받으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나 다시 부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시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자녀로 삼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역사의 종말론적 미래를 보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선교사역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이 선언문은 분단사상 처음으로 한국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통일선언문을 만들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 어느 쪽도 그리고 어느 정권 그 누구도 감히 분단의 죄책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분단의 죄책을 먼저 고백한 것은 분단된 조국의 남과 북 쌍방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고백”은 “분단체제 안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어 왔던 일이 우리의 죄임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고백”에서 먼저 출발하고 있다. 그런 후에 한국 민족의 분단은 “세계 초강대국들의 동서 냉전체제의 대립이 빚은 구조적 죄악의 결과이며, 남북한 사회 내부의 구조악의 원인이 되어 왔다. 분단으로 인하여 우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마 22:37-40)을 어기는 죄”를 범해 왔다고 고백한다.

한국기독교협의회는 계속해서 “...우리는 갈라진 조국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을 미워하고 속이고 살인하였고, 그 죄악을 정치와 이념의 이름으로 오히려 정당화하는 이중의 죄를 범하여 왔다. 분단은 전쟁을 낳았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쟁방지의 명목으로 최강 최신의 무기로 재무장하고 병력과 군비를 강화하는 것을 찬동하는 죄(시 33:11-20, 44:2-7)를 범했다”고 고백하였다. 나아가서 우리 한국교회가 “민족분단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침묵하였으며, 면면히 이어져 온 자주독립정신을 상실하는 반민족적 죄악(로마서 9:3)을 범하여 온 죄책을 고백”하였으며 또한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는 죄(요한 일서 3:14-15, 4:20-21)를 범했음”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이며, 분단에 의하여 고통을 받았고 또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한 죄이며, 그들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지 못한 죄이기에(요한일서 3:17)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 죄책을 고백한 것이다.

이러한 죄책고백과 함께 우리의 신앙도 새로워져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 민족에게 한반도를 맡겨주신 하나님은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남과 북으로 나눌 수 없는 땅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땅을 우리는 세계의 이념적 대결로 그리고 민족간의 전쟁으로 나누어지고 말았으며 아직도 이 땅에서 가장 사악한 적으로 원수로 생각하여 총칼을 겨누고 있다. 그로 인하해서 남과 북은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생명죽임의 분단 속에서 신음하며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통일의 신앙은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과 함께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의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리시는 생명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면서 둘로 나누어진 것을 하나되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정의평화를 분단된 한반도에서 이룩해 나가는 그것이며 이러한 신앙으로 세상을 섬기고 봉사해나가는 그것이다.

둘째, 이러한 죄책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또한 새롭게 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민족분단이라고 하는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여야 한다. 세계 강대국들이 그어 놓은 민족의 분단과 남과 북의 전쟁을 통해 더욱 분단을 고착시켜버린 민족의 분단이라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언자 이사야가 본 메시아의 모습을 키가 크고 뚱뚱하며 화려하고 멋진 모습이 아니라 고난받는 종으로서 무거운 짐을 지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사야 53장)인 것이다. 사도 바울 역시 에 억눌리고 짓눌려 작아져 버린 난장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꼭 같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어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한다.(빌립보 2:5-8) 이사야와 바울이 본 그리스도의 모습은 무겁디무거운 십자가를 지시다가 지시다가 그 무거운 짐에 짓눌려 작아져버린 난쟁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세계분단의 멍에와 죄악을 짊어지시다가 지시다가 그 무겁디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려 작아져버린 난쟁이가 되셔서 우리 한민족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평화통일의 신앙은 민족분단의 상황 속에서 절규하고 있는 남과 북의 민중과 민족의 신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신음과 절규의 소리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외침을 발견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반도 안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분단의 집자가를 함께 짊어지고서 하나님의 생명정의평화를 우리 한반도에서 이룩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셋째, 평화통일을 향한 교회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밥상공동체 모습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잔치집과 비유했고 먹고 마시는 것을 자주 말씀하셨으며, 자신이 친히 잔치집에서 포도주를 공급(요 2:1-11)하기도 하였다. 예수의 적대자들은 예수가 먹기를 탐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을 때(마가 2:16; 마태 11:19; 누가 7:34) 예수는 “잔치집에 온 신랑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금식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마가 2:19)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하는 변두리의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어울린다는 것, 즉 밥상공동체를 이룩하셨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예수는 밥상의 머리(주인)로서 함께 먹고 그리고 억눌리고 소외된 민중들을 따뜻하게 대접하였을 뿐 아니라 “서로 원수된 자들이 화해와 대화를 위하여 한 자리에 모이는 밥상머리의 주인(초대자)”으로 이해한다. 밥상공동체의 머리이신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 곧 구원의 밥상을 차려주셨고 친히 우리들에게 그 밥상의 먹이가 되어 주셨던 것이다. 

밥상공동체로서 교회란 그리스도를 평화의 종, 밥상공동체의 종으로서 고백하면서 민중의 밥의 정의를 위해서 그들의 복지를 위해서 밥상공동체를 마련해야 한다. 밥상공동체로서 교회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남북 교회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 남북의 모든 사람들이 만나 먹고 마시고 화해하고 하나되는 밥상공동체를 마련하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밥상공동체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심지어 원수된 사람들까지도 모여서 사랑으로 만나고 먹고 마시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남북의 형제․자매들이 예수의 밥상공동체의 정신에 따라 밥상의 종이 되어 아시아의 밥의 정의를 위해서 그리고 세계의 밥의 정의를 위해서 밥상공동체를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곳에 예수는 현존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우리는 구원의 예수, 평화통일의 예수를 만나는 것이요 그리고 그곳은 민족의 즐거움이요, 희망이요 평화통일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예배드리고 성찬식 밥상에 함께 앉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어 마실 때 그리스도를 평화의 종으로 고백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밥상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남과 북으로 헤어진 식구들이 한 밥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날에 분단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져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비로소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화해의 주님으로 고백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것 중에 하나가 평화통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선교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분단과 그 분단에 대한 죄책고백 함께 한반도의 평화통일을통해 세계에 평화로 봉사하고자 하는 신앙의 마음으로 지난해 여름학교에서 함께 작성한 고백기도를 다시 한번 더 고백해보자.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이 한반도의 평화와 생명과 정의의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분단의 아픔을 가진 남한과 북한의 평화와 화해를 원하시는 하나님, 세계사적으로는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냉전이 그쳤으나,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이념적 대립과 갈등으로 평화를 이루는 일이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념을 넘어서는 참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와 공의의 실천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를 받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며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로운 한반도가 되게 하옵소서. 비록 남북관계와 국제정세가 경색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북한 주민을 위한 생명의 나눔과 사랑과 평화를 만드는 일을 지속적으로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 땅에 임하게 하옵소서. 아멘”

©WCC, 지난 WCC 10차 총회 기간 중 통일전망대를 방문한 WCC 총회 참가자들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리본을 달고 있다.


하율이 아빠 신학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