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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앎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교회의 소명(WCC 문서)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교회의 소명

An Ecumenical Call to Just Peace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눅1:79)

주제성찰: 평화


1. 문서의 배경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전세계 모든 그리스도교 형제자매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 그리스도교회의 일치된 요청이다. 이 요청은 2006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의의 결의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졌고,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의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화해와 평화를 향한 교회의 모색”(Decade to Overcome Violence, 2001-2010: Churches Seeking Reconcliation and Peace)을 통하여 드러난 평화에 대한 입장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 2011년 5월,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하나님께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주제로 열리는 국제 에큐메니칼 평화회의를 기점으로 새롭게 솟아오를 평화를 위한 헌신적인 노력들과 함께 앞으로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정의와 평화에 대한 새로운 일치에 도달하는데 이 문서들이 일조하기를 소망한다.


IEPC에 참가한 청년들이 경제정의를 호소하는 스킷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2. 문서의 내용(요약)

1) 성서의 가르침

성서는 정의와 평화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사 32:17; 약 3:18) 이 두 가지는 인간 사회에 있어서 바르고 지속되어야 할 관계성과 우리가 지구와 맺고 있는 생생한 연결성, 그리고 창조세계의 조화와 보존을 가르치고 있다.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계실 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만 상처입은 오늘의 세계에 주시는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약속과 선물—내일의 소망이며 지금 여기에서 선물이 되는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


2) 교회의 증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평화를 이루는 자리가 되는 소명을 갖고 있다. 특별히 다양한 방식의 성례전을 통하여 우리의 예전적인 전통들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세상과 함께 하나님의 평화를 나누는 방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그들의 사명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교회의 분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화를 만드는 자로서의 교회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끊임없이 새롭게 되어야 함을 알려준다. 오직 하나님의 평화를 기초로 삼을 때 모든 믿음의 공동체들은 “지구적 차원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 속에서만 아니라 각자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화해와 평화의 일꾼”이 될 수 있다.(1998년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평화를 살아내는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스스로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산 위에 세워진 동네(마 5:14)로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맡기신 화해의 사역을 실천하는 신앙인들은 교회의 경계를 넘어 이 세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보여준다.(고후 5:18)


3)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전해야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심각한 폭력과 인권유린, 그리고 창조질서의 파괴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만일 모든 곳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이 세계 안에 고요한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전쟁의 소문으로 동요하고 있으며, 민족적 종교적 적개심과 인종과 계급의 차별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으며, 아직도 아물지 않는 상처들이 남아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추방당하고, 집과 재산을 잃고, 자기 나라 안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이러한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많은 여인들이 성폭행과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다. 여러나라에서 국민들은 군대와 민병대, 게릴라들, 범죄조직 혹은 정부군에 의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은 국가안보와 군사력 증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에 의하여 고통당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권력을 가진 소수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결정을 내리는 한편에서 매일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있다.


4) 정의로운 평화의 길

정의로운 평화는 우리 모두에게 삶으로 증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평화를 성취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인종과 계급, 성별과 문화, 종교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폭력을 포함한 개인적이고 구조적이며 대중적인 폭력들을 방지하고 제거해야 한다.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서 비폭력 저항은 중심적인 요소이다. 잘 조직된 평화적인 저항은 정부의 억압과 학대, 혹은 취약한 사람들과 자연을 착취하는 경제활동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한다. 정의로운 평화는 “정의로운 전쟁”과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며, 불의한 무력사용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욱 적극적인 실천이다. 침묵의 무기에 더하여 사회정의와 법치주의, 인권존중과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포함한다.

5) 정의로운 평화의 여정을 살아가기

정의로운 평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눅 1:79) 것을 믿으며 인류와 모든 창조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우리는 원수에 대한 용서와 사랑, 적극적인 비폭력과 타인에 대한 존중, 온유함과 자비를 포함하는 평화의 윤리와 실천을 공유하며 여행하는 동반자들이다. 이웃들과 함께 가는 길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움켜쥐고 사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큰 관용과 개방의 삶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을 발견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있는 약함을 보고, 공통의 인성을 확인하면서 힘을 얻는다. 이웃은 더 이상 수상한 사람이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여정과 길을 함께 해야 할 인간 동료이다.


6)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 선 이정표들

갈등의 변화는 평화를 만드는 여정에서 근본적인 부분이다. 변화의 과정은 가시적인 희생자들과 공동체들을 만들어내는 폭력의 정체를 드러내고 숨겨진 갈등을 폭로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갈등의 변화는 대적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갈등의 증폭으로 향하는 관심을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갈등의 상황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실패의 신호이며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 나타난 새로운 장애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를 만들고 세워가는 사고와 행동, 그리고 법적인 연합의 자리로 함께 나오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비폭력적인 갈등의 변화를 실천하며 평화의 과정으로 공동체를 인도하는 새로운 윤리적 담론을 수용해야 한다.


7) 정의로운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

성서는 우리에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으며, 존엄성과 권리를 은혜로 받았다고 가르쳐 준다. 이러한 존엄성과 권리를 인식하는 것은 정의로운 평화를 이해하는 중심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여 인권을 수호하고 국제적인 법치주의의 강화를 추구하는 모든 시민 사회의 동지들과 우호와 협력 속에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신앙 전통과 신념, 그리고 세계관을 가진 이웃들과 협력하여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이러한 헌신 속에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폭력을 거부하고, 가난하고 눌린 자들을 위하여 정의를 세우라 하신 복음의 명령에 응답하는 길을 찾고 있다.(마 5:1- 11, 눅 4:18) 우리는 과거와 현재에 편견에 가담하고 적대감을 확대시키는 태도에 편승했던 그리스도교회의 공모를 인식하면서, 우리의 공동체들을 화해와 수용, 사랑의 공동체로 세우는 일에 헌신한다. 평화의 비전을 가진 교육은 평화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차원이 아니다.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개인들의 영적인 성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평화교육은 우리 안에 평화의 정신을 고양하고, 인권에 대한 존중을 함양하며, 폭력을 대치하는 길을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평화교육은 상이한 여러 전통과 문화들 속에 있는 관습과 가치들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동력으로서 적극적인 비폭력 운동을 전개한다. 인성과 양심에 대한 교육은 사람들이 평화를 추구하고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한다.


8) 정의로운 평화의 공동적 추구와 성취

평화를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순례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공동체들을 세우는 많은 기회들을 제시한다. 어떤 교회가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며, 재물을 윤리적으로 사용하고, 환경을 돌보며,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면, 그 교회는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교회들이 연합하여 평화를 위하여 일할 때, 그들의 증언은 세상에서 보다 많은 믿음을 얻을 것이다.(요 17:21)


9) 공동체의 평화를 위하여 – 그러므로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미 4:4)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 이니냐?”,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미 6:8, 눅 10:27, 마 5:44) 너무나 많은 공동체들이 경제적 계급과 인종, 피부색과 신분, 종교와 성별로 인하여 분열되어 있다. 교회가 평화를 만드는 일꾼이 되려면,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평화를 위한 실천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신자들은 반드시 교회 생활 속에 있는 폭력에 대한 침묵의 문화를 깨뜨리는 일에 참여하고, 우리의 공동체들 안에 있는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습관화된 분열을 극복하는 일에 연합해야 한다.


10) 지구의 평화를 위하여 – 그러므로 생명이 유지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전케 하셨으며, 인류의 자손들에게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셨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창조 질서와 인간 사이의 관계가 깨졌다.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생명과 정의와 사랑의 청지기로 일하는 것이다.(창 2:1-3, 요 10:10,

롬 8:20-22) 하나님의 귀중한 선물인 창조세계를 돌보고 생태계 정의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정의로운 평화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교회와 세계를 교구로 살아가는 교인들은 반드시 자기비판적인 입장에서 환경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전체로서 지구의 올바른 지속을 지원하는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11) 시장의 평화를 위하여 – 그러므로 모두가 존엄성을 가지고 살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와 다른 생물들이 끝없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자원을 허락하신 놀랍게 창조하시고, 그 안에서 모든 인간이 계급과 성별, 종교와 인종 혹은 국적에 관계없이 각자에게 주어진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풍성함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시 24:1; 145:15; 사 65:17-23) 시장의 평화는 “생명의 경제”를 창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적절한 경제사회적 관계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존중, 자원의 공정한 분배와 지속가능한 사용, 모든 사람들을 위한 건강하고 충분한 식량, 그리고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 다수의 사람들이참여하는 것이 토대이다. 교회는 뜻을 같이 하는 사회단체들과 함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의 완전한 성취를 위하여 반드시 노력해야 한다.


12)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보호되었더라

우리는 생명의 주시는 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생명을 취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원수를 사랑해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등하게 판단하고, 나라들은 공공의 장에서 진리를 따라야 할 책임이 있으며, 무기를 쳐서 농기구를 만들고, 더 이상 전쟁하는 법을 배우지 말아야 한다.(출 20:17, 사 2:1-4, 마 5:44) 우리는 생명과 그 기반이 되는 것들을 파괴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신장된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인류가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을 넘어선 이러한 위협의 강도는 전례없는 지구적 차원의 공동대응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강도를 지닌 두 가지 위협, 즉 핵무기에 의한 대량살상과 기후변화는 생태계의 많은 부분과 정의로운 평화 운동의 모든 발전을 무너뜨릴 수 있다. 또 다른 위협은 생태계의 멸종을 가져오는 생활방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협에 맞서는 국제적인 연대투쟁은 아직 미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교회들은 신앙 전통을 가진 공동체들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과 신뢰와 협력을 이루고, 국가 간의 전쟁을 억제하고 인류와 지구를 전례없는 위험에 빠트리는 무기들을 제거하고 전쟁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불법성을 드러내야 한다.


3. 문서의 성찰 (한국적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올해로 휴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한다. 여전히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이산가족은 이별의 고통을 간직한 채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평화통일을 향한 노력은 미비하다. 해마다 남과 북에서는 거대한 국방비가 지출되고 있다. 평화통일 없는 한반도는 불신과 폭력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북한의 핵무기 때문에 초긴장 상태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언젠가 인류가 전쟁을 종식시키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평화통일은 우리의 권리이다. 북한 사람들은 우리의 형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분단의 벽을 넘어 만나야 한다.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준비하면서 한국교회가 내딛는 평화의 발걸음이 남과 북의 평화통일 없이는 정의로운 평화의 발걸음이 될 수 없다. 발 한 짝만 내딛으면 닿을 수 있는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넘으려면 UN 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비극적인 일인가! 언제쯤 우리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얼싸안고 춤을 추게 될까? 언제쯤 우리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주님이 베푸신 상에 함께 앉아 먹고 마시는 일이 가능할까?


WCC 제10차 부산총회 준비위원회 문서에 의하면 북한을 초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WCC 제10차 부산총회에 북한이 부디 참석하여 평화의 발걸음을 함께 내딛길 소망한다. 평화통일 없는 남과 북의 사람들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사람들일 뿐이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비추듯이 평화의 해가 한반도에 비추어 남과 북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길 바란다.(눅 1:78-79)


휴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부산 벡스코에서 WCC 제10차 총회가 열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이다. 얼어 붙은 남과 북의 발걸음은 이제 장벽을 넘어 평화를 향해 함께 손을 잡고 이야기하며 걸어가야 한다. 평화의 축제가 열리는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개최하는 한국교회는 일치를 추구하며 자유와 평등과 인권이 존중되는 정의 평화가 강같이 흐르는 날이 반드시 오게 해야 한다. 또한 남과 북이 하나님의 선물인 평화를 받아들이길 간절히 기원한다. 이제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통해 향후 분열되었던 한국교회 예장 통합이 화해를 시도하며 한국교회 교파간의 대화를 통해서 상호이해와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WCC 제10차 부산총회 이후에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다면 여름캠프도 개교회, 지역교회 중심이 아닌 오이코스 신학운동처럼 지역과 교파를 뛰어넘어 연대하여 평화교육을 담은 생명평화캠프를 개최하며 평화의 인물을 길러내는 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